주 제: 가난했지만 부하게 살았던 사람들
본 문: 고린도후서 6장 3-10절
설교자: 조 성 훈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그의 삶의 목적이 어떻게 하든지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었고, 늘 복음 전파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사도 바울에게 맡겨진 직책
사도 바울의 삶의 목표는 자신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빌 1:20). 어떠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놀고 먹으며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머지 것들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나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당하는 어려움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일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4-5)”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모세와 사도 바울은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 즉 왕으로 살거나 엘리트로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들이 노력하는 것도, 판검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일을 위해 겪어야 하는 어려움들만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실상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사도 바울은 마치 사람을 속이는 사기꾼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곧 불탈 것이고 당신은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한다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런 인식을 받을 것입니다. 진실을 말해주어도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의 종교전파요 직업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한 사람이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도 유명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세계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으로 자신이 유명하다고 한 것일까요? 성도들 사이에서 자신이 알려지고 유명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천사들도 알고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6 -28)”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여러분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하늘나라 생명책에서는 등장합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좋습니다.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하나님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택하셔서 천사보다 높은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은 병도 안 걸리고 사고도 나지 않게 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업이 다 잘되고 낚시를 가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이 잡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왠지 징계를 받는 자처럼 보입니다. 집안에 우환이 많고 자녀는 공부를 잘 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수없이 매 맞고 옥에 갇히는 삶을 살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징계 받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고후 11:23-27).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그리스도인은 기뻐할 일이 없는데 기뻐하는 것입니다. 로또 복권을 사기만 하고 좋아하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많은 이들이 주님께 돌아왔다는 것, 자신이 주님 안에서 얼마나 복된 자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이것은 물질을 나눴다기보다는 영혼을 부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여러분에게는 부러워 할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집도 없고 결혼도 못한, 남들이 볼 때 아무 것도 없는 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할 때 그것은 하늘의 것들을 말한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들
사도 바울은 가난했지만 부하게 살았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보이는 것을 생각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눈을 열어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참다운 만족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평안은 환경이 바뀌면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환경과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평안입니다. 여러분 안에 주님이 주신 평안이 거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가시는 곳마다 어려움을 당하셨는데 그 안에 있는 평안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도 그와 같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신 기쁨, 영원한 생명, 하늘의 기업, 영원한 안식도 그렇습니다(요 15:11, 요일 2:25, 고후 4:17, 히 9:15, 히 4:9 -10, 벧후 1:1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모두 “영원한” 것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결론
우리는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가진 것들이 많아서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이미 받은 것들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때 평안과 기쁨,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같이 복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천사들이 살펴보기를 원하는 자들이 아닙니까. 사도 바울이 그런 삶을 살았다면 우리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부한 삶, 우리의 기쁨과 만족은 허황된 것이 아닙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우리가 얼마나 복된 자인가를 생각하면 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새해 인사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는데, 이제는 주님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복 받은 자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받은 복을 헤아려 보고 참 만족과 기쁨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