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영광

2005년 November 20일 ()

본문: 요한복음 17:1-12 |

주 제 : 고난과 영광
본 문 : 요한복음 17장 1절-12절
설교자 : 조성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고난과 영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의 기도인데, 흔히 말하는 주기도문은 기도의 예를 보여주신 것이고,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 땅에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고, 33년을 사시다가 이제 다시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할 일을 거의 다 마치시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주님의 마음을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또한 제가 6년 전 미얀마에서 경험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미얀마에 있을 동안 세면 시설을 비롯한 모든 숙박 시설이 열악했고, 또한 음식도 너무 맞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한국에 오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 얼마나 행복했던지, 마치 구원을 받는 것 같은 기쁨을 누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의 고생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도 기뻤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셨는데,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서 33년 간 사시고, 이제 하늘나라로 돌아갈 날을 얼마 앞 둔 주님의 심정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33년이라는 시간동안 하나님으로 누리지 못할 많은 핍박들, 고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주님의 마음을 여러분들도 한 번쯤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
17절 말씀에 주님께서 "때가 이르렀다." 고 말씀하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이르렀다는 말이며, 곧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마칠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때, 십자가의 고난이 아닌, 십자가 너머의 영광을 바라보셨습니다. (히 12:2) 이제 곧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또 곧 다시금 누리게 될 그 영광과, 조금 후면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인해 얻게 될 영혼들을 생각함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십자가의 고난은 너무도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받게 되는 그 수치와 고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의 그 고통은 주님께도 너무도 어려운 것이었던 것입니다. 제게 감동이 되었던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이 아닌, 십자가 너머의 영광을 바라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늘 그에게 닥치는 고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난 뒤에 오는 영광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하늘나라에 올라가게 되면,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서의 영광은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롬 8:18)
주님께서는 또한 자신 앞에 다가오는 십자가의 고난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의 목적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든 그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시겠다는 주님의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또한 사도 바울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떻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고난 너머의 영광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1절 하반절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더 영화롭게 해드리기 위해서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십자가가 주님에게 영광이 될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는 것이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계셨던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모든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영생에 대한 이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데에는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3절 말씀에서는,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영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입니까?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그것이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예수님이 누구이고, 왜 세상에 오셨으며,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알고, 그분의 사역을 나를 위한 것으로 받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안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고, 또 주로 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영생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 즉 그 안에 계시게 하는 것이요,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시간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며,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 안에 있는 것, 영원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영생 때문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험한 33년 동안의 인간의 삶을 우리를 위해 택하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고생을 한 사람은 고생스런 환경이 어려운지를 잘 모르지만, 풍요로운 삶을 살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주님은 어떠하셨을까요? 하늘의 큰 영광 속에 사시다가, 이 땅에 오셔서 얼마나 어려움을 겪으셨을까요?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러한 고난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방법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 즉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경고하는 것, 복음을 전파하는 것, 각종 고통에 메인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병을 고치는 것, 십자가의 대속 사역 등을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말이 아니며, 뜨거운 감정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사람들을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나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을 가리켜 아버지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참 많은 감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 영광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이 주님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사형 선고를 받았고, 내일 모레면 사형이 집행된다고 할 때, 어떤 마음이 들까요? 굉장히 불안하고, 떨릴 것입니다. 물론, 주님도 그러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고난을 영광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계셨기에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은 기도를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더 나아가 이런 기도를 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것이요, 우리에게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다 전하시고, 우리 마음을 여셔서 그것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늘나라의 영광 가운데 계시며, 우리가 그곳에 올 것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고난은 짧고, 영광은 긴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한 고난은 적은 것이요, 영광은 큰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를 보여주십니다. 33년이라는 짧고 적은 고난의 시간을 통해, 우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영광을 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도 우리 앞에 하나님을 섬기면서,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 살아갑니다. 많은 고난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지만, 고난들 중 어느 하나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익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받게 되는 고난은 유익한 것이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고난 속에서도 고난을 영광으로 승화하셨고, 그 영광을 보셨습니다. "아버지여, 이제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또한 사도 바울은 할 수만 있으면 고난 가운데서 부활의 영광 가운데 거하기를 원했습니다. 쉬운 삶과 고난의 삶 중 고난의 삶을 택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에굽에서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노예 생활을 택한 것처럼 사도 바울 역시 그러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진정 따르기로 했다면, 편한 길만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따라야 할 본을 보여주신 주님의 삶을 따라야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지 못하신 분들에게 오늘 말씀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영생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즉, 그분이 누구이고, 왜 세상에 오셨으며,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알고, 주님의 사역을 나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곳에 앉아계신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와 있는 지금 주님의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또한 믿는 우리들이 알아야할 것은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닌 아버지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값 주고 사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할 때에 우리를 향한 사랑이 시작되었고,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셨고, 믿도록 인도하셨으며,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우리에게 큰 영광을 예비해 두신 주님께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장차 받게 될 영광은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영광입니다.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그런 큰 영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영광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그 앞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우리 삶에 그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하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시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그 승리가 우리에게 큰 영광을 가져다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