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고난 중에 위로
본 문: 디모데후서 4장 16-22절
설교자: 조 성 훈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많은 어려움 가운데 처하게 됩니다. 인생에서 고난은 벗어버릴 수 없는 것이기에 사도 바울도 우리가 육체 가운데서 짐 진 것처럼 탄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이러한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외로움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16)”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재판을 받게 된 상황입니다. 그곳에서 사도 바울을 위해 변호해주는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좋을 때는 따르는 사람도 많고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막상 재판장 앞에 섰을 때는 아무도 곁에 없다는 것, 그것이 사도 바울의 서글픔이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반드시 혼자 가야할 곳, 아무도 따라와 줄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수술실 바로 앞까지는 가족들이 따라오지만 그 이후부터는 혼자 수술실로 들어가야 하듯이 말입니다. 때로는 사업의 실패 때문에, 때로는 건강이 좋지 못해서, 때로는 모함에 의해서 평소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이 때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딤후 1:15)”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고후 10:10)” 설교자에게 “말이 시원치 않다”는 것처럼 치명적인 말은 없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르치지도 않은 것을 가르쳤다는 모함을 받았습니다.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롬 3:8)” 또한 사도 바울이 물질에 욕심이 있어서 복음을 전하러 다닌다고도 모함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고후 12:16-18). 또한 함께 주님을 섬기던 사람이 세상으로 빠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우리를 외롭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이와 같은 짐들에서 우리는 때때로 벗어나고 싶지만,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이 짐을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바울의 위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17)” 우리의 진정한 위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위로는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행 18:9)” 여러분이 환란 가운데서 위로받으려는 목적으로 교회에 나오셨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몸 하나 추스리기도 힘든 사람들이 남을 돌아볼 여유는 없습니다. 진정한 위로, 힘과 능력은 오직 주님에게서 올 뿐입니다.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행 27:23-25)” 사도 바울은 그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 신앙의 원동력을 주님에게서 얻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시 16:8-9)” 다윗은 주님이 함께 계심으로 요동치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모세 역시 사람으로부터는 위로받을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의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위로하기는커녕 불평하기만 했습니다. 그는 어디서 힘을 얻어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에게서 그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우리는 주님을 통해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힘을 주시면 우리는 단지 감사하고 기뻐할 뿐이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힘을 주신 이유가 단지 기쁨만 주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계속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명을 늘 기억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이 주시는 힘과 위로가 나를 위한 것인지,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계속하기 위함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바울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역시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우리 몸에 필요 없는 지체가 없듯이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지 않으신 지체는 없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순종하고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명에 순종했느냐에 대하여 언젠가 주님이 물으실 것입니다. 그 때 몰랐다고 말하시겠습니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사도 바울은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러한 위험 가운데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건짐을 받는 체험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위험이 많으면 구원을 체험하고 고난이 많으면 열매가 많으며, 어려움이 많으면 주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는 것, 그는 그것을 경험하면서 살았습니다.
바울의 소망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18)” 사도 바울은 주님이 자신을 이 악한 일에서 건져내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구원을 몸소 체험하여 주님을 잘 알 때 오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또한 그는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늘에 대한 것을 상상해 보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희망을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7)”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갈 1:5)”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1)”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빌 4:20)”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딤전 1:17)”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 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8)” 그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잊지 않았습니다. 주님에 대한 확신이 사도 바울의 마음을 감동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환경으로 인하여 찬양할 수 없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통해 구원을 맛보고 하늘에 대한 소망과 구원에 대한 기대를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디모데를 위한 기도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19)”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로마에 살고 있다가 황제의 칙령으로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이주하여 거기서 천막 짓는 일을 하면서 사도 바울을 도왔던 훌륭한 부부였습니다. 또한 오네시보로는 바울의 친구로서 로마에서 자주 바울을 방문하여 도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딤후 1:16-17)”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20)” 에라스도는 고린도의 재무관이었는데 교회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드비모의 병듦은 사도 바울에게 아픔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가는 길이 비슷합니다. 그 길은 문이 좁고 길도 협착하여 가기 쉽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 곁에 아무도 없고 혼자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까이에서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언젠가 사람들이 등을 돌릴 때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중한 병에 걸려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외로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어려움 등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버릴 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잘했든 잘못했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고 위로자가 되십니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실망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힘과 위로를 받게 됩니다. 주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시고 주님에게서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