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 교회에 대한 바울의 사랑
본 문 : 사도행전 20장 25절~38절
설교자 : 조 성 훈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오늘 저는 본문 말씀을 통해 <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만일 제가 이 교회를 떠나는 입장이 되어 다시는 육체 가운데 여러분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교회의 장래에 대한 생각 등 여러 가지 생각에 근심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의 사도 바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애착을 가졌던 에베소 교회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하면서, 장로들에게 교회의 미래를 부탁하고, 여러 가지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양과 같아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보호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떠난 뒤 흉악한 이리가 와서 양떼(교회)를 아끼지 않을 것이며, 교회 안에서 자신을 좇게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문제 등 여러 가지 위험을 말하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깨끗하다
사도 바울은 이제 떠날 것에 대해 말하면서, 여기서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깨끗하다.” 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도 바울이 자기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주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했다는 핑계를 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받아들이지 않은 그에게 책임을 돌리겠지만,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 피를 복음을 전하지 않은 자에게 돌리겠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도 바울은 이런 면에서 자신은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장로들에게 사도 바울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모두 가르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인도하는 입장에서 때때로 성도들에게 가르치기 쉽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할 때,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전해주었습니다. 헌금, 징계 등 모든 부분에 대하여 아끼지 아니하고, 성도들과 장로들에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입으로만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그의 삶으로도 성도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의 삶으로 친히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양떼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경고
사도 바울은 양떼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경고하면서 첫째로, 자신을 잘 살피고, 양떼를 살피라고 말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서 바로 서야 합니다. 교회를 인도하는 목자들 또한 지속적으로 주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바로 서지 않으면 교회를 잘 인도할 수 없습니다. 목자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꾸준히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목자들은 양떼를 자신의 양떼로 만들려고 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않을 때, 스스로가 양떼에 위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양떼의 적들을 말하면서,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느헤미야의 삶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전을 재건할 때, 그는 외부로부터 수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섬기는 교회에는 반드시 핍박이 있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 역시 사람들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한편, 세상에는 늘 진실한 선지자보다 악한 선지자가 더 많습니다. 느헤미야를 핍박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실한 일꾼보다 거짓 일꾼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양의 가죽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는 거짓 양들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양의 탈을 쓰고 오기 때문에 쉽게 구분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들은 양을 잡아먹기 위해 양가죽을 쓰고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떠난 뒤에 닥치게 될 이리의 침입에 대해 수차례 경고하고 있는데, 그는 그가 세운 장로들 사이에서도 양떼를 헤치는 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잘못된 장로를 세운 것은 아닙니다. 분명, 장로의 자격을 갖춘 사람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는 결코 타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장로들에게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격을 갖추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운 일꾼이라도, 늘 자신을 살피지 아니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자신을 좇게 만들려는 욕심이 생깁니다.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꾼이 좋은 일꾼입니다. 사단은 이런 좋은 일꾼이 되게 만들지 않습니다. 자꾸 자신을 따르고, 자신을 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만큼 따르고, 자신에게 얼마만큼 관심이 있는가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들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싸워야 할 싸움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보게 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늘 주님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들이 사랑이 적은 것 같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까? 이는 영적인 큰 질병의 첫 증상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가 아닌, 주님에게 관심을 갖게 만드는 그리스도인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하니라 하나님을 찬송하게 만드는 그리스도인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두려움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고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다른 이에게 돌리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에베소 교회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자신을 좇게 만드는 자들이 일어났고, 에베소 교회는 결국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교회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사람을 보게 만드는 교회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3년이나 각 사람을 눈물로 권고했는데, 그들은 사도 바울의 권고와 부탁을 결국 저버리게 된 것입니다.
보호에 대한 의뢰
사도 바울은 장로들에게 권고하면서, 에베소 교회를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왜 주님께 고린도 교회를 부탁했을까요? 이는 교회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주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말씀께 부탁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지 않고서는 교회는 타락해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공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야지만 교회는 절대로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말씀을 통해서만이 교회는 그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살피면서,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나의 본을 기억하라
33절 말씀에 사도 바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어떻게 가르쳤으며, 또한 어떻게 섬겼는지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실질적인 삶을 본받을 수 있었던 에베소 교회는 참으로 복 받은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물질이나 명예, 그 어떤 것도 탐하지 아니하였고, 필요할 때에는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과도히 짐을 지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범사에 에베소 교회에 모범을 보였던 것입니다.
나아가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우리는 모두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받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생각해보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큰 기쁨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지만,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늘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또한 오늘날의 우리에게 주는 것이 더 복된 것임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
사도 바울 시대에도 바울은 늘 교회가 위험 가운데 있는 것을 알았다. 밖으로부터 오는 이리의 공격이 그치지 않았고, 안으로부터의 자기를 좇게 하려는 자들의 공격도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감독자들을 세우셨다고 말하며 이제 그들을 감독자들의 손에 맡겨놓고 떠나면서 그들에게 양들을 잘 보호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적의 공격은 계속됩니다.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오는 공격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계속 자기를 좇게 하려는 자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권고를 따라 스스로를 살피고 조심해야 합니다.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보게끔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까 하는 것이 성도들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회가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부디 다른 성도들을 넘어뜨리는 역할을 하는 분이 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장로들은 살펴서 이러한 공격들로부터 하나님의 양 무리를 보호해야 하며, 성도들은 이러한 장로들의 노력을 이해하고 말씀과 기도 훈련으로 자신들을 무장해야 합니다. 또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 있는 것임을,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것이 더 복 있는 것임을 깨달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 교회는 주님 앞에서 든든히 서고, 주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