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
본 문: 베드로전서 3장 17절-22절
설교자: 조 성 훈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참 많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의를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축복된 일이고, 좋은 일이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을 생각해볼 때에는 고통스러운 면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과 다른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에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 말씀에서는 세상과 다른 삶을 삶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받는 고난은 믿음의 선진들이 받았던 고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고난(17절)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고난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경제적으로 인한 고난이 참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법으로만 경제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비롯되는 경제활동의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월급보다 정직하지 못한 방법들로 벌어들이는 부수입이 두 배 가량 더 많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정직하게 생활한다면, 생활 자체를 영위해나갈 수 없을 만큼 어렵게 됩니다. 그야 말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또한 질병으로 인해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습니다.
오늘 특별히 살펴보길 원하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고난입니다. 악한 사람들 가운데서 선하게 산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단적인 예로 회식 자리는 어떻습니까? 요즘 특별히 연말이 다가오면서 각종 송년회를 비롯한 회식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다들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회식 자리를 즐기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구석에 앉아 안주만을 먹으며, 지겨운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또 거기서 오는 술의 유혹은 얼마나 많습니까? 또 청탁을 위해 뇌물을 건네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에 있어서 정직함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굉장한 어려움을 줍니다. 정말 직장 생활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눈총을 받고 어려움을 만나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지불해야할 대가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에 대한 가장 좋은 본이 되시며, 또한 좋은 예가 되기도 합니다. 주님은 주님께서 많은 어려움을 당한 이유에 대해, 주님께서 세상을 악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에 속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진리를 전함으로 많은 고난을 받으셨는데, 그것은 세상의 악한 것을 악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죄를 이야기해 줄 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말하고,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면 듣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을 악하다고 말할 때 그들은 우리를 배척하고 싫어합니다. 또한 선한 삶으로 악한 행위에 함께 하지 않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 삶으로 세상 사람들의 악한 행위를 정죄합니다. 악인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악행을 함께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 때 이처럼 많은 고난이 따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미워하였은즉, 너희도 미워하리라.” 하지만, 우리가 이런 고난을 두려워서 그들처럼 산다면, 죄를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고난은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과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인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행하든지 고난을 받는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에 대한 선진들의 삶과 권고
우리보다 앞선 많은 선진들이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던 사람들 중에 평안하게 살다 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선지자들의 고난과 오래 참음을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고난 투성이입니다. 육체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많은 고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과연 주님을 따름으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고난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도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골 1:24, 딤후 1:8, 2:3, 고후 1:5, 벧전 4:13-14)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일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혹시 여러분의 잘못들로 인해 고난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의로운 삶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지, 자신의 잘못을 인해 고난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옥에 있는 영들에 대한 해석(19-20절)
19절부터 20절까지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있습니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 하나는 옛날 노아를 통하여 지금은 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해석이요, 다른 하나는 지금 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승리를 선포하셨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요, 하늘나라에서 베드로에게 물어보면 아마 정확한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정확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예수님을 영접할 기회가 있지만 죽은 영혼들은 예수님을 영접할 기회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자를 위해서 하는 모든 의식들이나 그 어떤 것도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세례의 의미와 그리스도인의 삶(21절)
세례를 받을 때 우리가 물 속에 잠기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물 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세례가 우리의 죄를 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는 없습니다. 물은 그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지 물 자체가 우리의 죄를 씻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세례를 받을 때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서두에서 말했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모든 사람 앞에서 이제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심을 선포하는 삶이란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입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위해 산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위한 생각들이 아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그들의 마음속을 지배하는 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한편 그러한 삶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인 것입니다.
주님의 삶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주님의 삶은 단 1%도 주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삶이었으며, 여러분과 저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의 핍박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침례의 의미대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해 살아나신 주님처럼 의로운 삶을 산다면 핍박을 받게 될 것 입니다.
고난에 대한 보상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늘 핍박만 받는 삶이 아닙니다.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벧전 3:22)
잠자리가 물속에서 애벌레의 어려운 생애를 끝내고 변화하여 하늘 마음대로 나르듯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고난의 삶이 있는 것 같이 영광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에 대한 좋은 예입니다.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셨지만 천국에서 세세토록 영광을 누리고 계십니다. 주님은 십자가 너머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고 십자가 죽음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은 우리가 받을 영광과 비례 합니다. 적은 고난은 적은 영광을 많은 고난은 큰 영광을 가져옵니다. 히브리서에는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초대성도들은 순교를 당할 때 더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더 큰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톱으로 켜는 것과 사자굴에 넣어져 사자밥이 되기도 하고 화형을 당했습니다. 고난은 잠깐이며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고난은 적은 것이며 영광은 큰 것 입니다.
맺는 말
우리는 다가올 영광이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현재의의 고난만 커 보입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주님을 위해 산 삶만이 남는 삶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받는 고난과 복음을 증거함으로 받는 고난들 그리고 의로운 삶을 삶으로 받는 고난들은 주님께서 다 기록 해 놓으셨으며 이에 따라 상급과 영광을 받게 될 것 입니다. 베드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뜻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뺨을 한대 맞을 때 마다 1억원씩 준다고 하면 여러분은 얼마나 맞기 원하십니까? 아마 죽지만 않을 정도로 많이 맞기를 원할 것입니다. 천국에서 여러분이 당한 모든 고난과 눈물을 주님께서 영원한 상급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섬기고 계십니다.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고난 받기를 싫어합니다. 이 땅에서는 솔로몬같이 영화를 누리고 천국에서도 사도 바울처럼 영광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천국에서의 삶이 결정됩니다.
바울과 모세와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주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갔습니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넓고 쉬운 길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좁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는 길도 좁은 길이요 고난의 길이라고 하시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섬김으로 받는 고난을 즐거워하십시오. 영원한 영광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처럼 기쁨으로 고난의 길을 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