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부활

2009년 February 8일 ()

본문: 고린도전서 15:12-19 |

주 제: 그리스도인의 부활

 

본 문: 고린도전서 15장 12절-19절

 

설교자: 조 성 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걷게 하셨습니다. 성경의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이후에 뒤따라오던 애굽의 군대가 홍해에 빠져죽고 자신들이 구출 받은 것에 대해서 온 백성이 소고치고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마르게 하셨다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삿 2:7). 그러나 문제는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애굽의 이적과 홍해의 기적들을 목격한 백성들이 모두 죽고, 다음 세대가 살고 있는 시대에 오자 점차 홍해의 이적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도 역시 하나님께서 요단강 물을 마르게 하셨습니다. 그때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해 요단강 가에서 돌 열두 개를 취해 길갈에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점점 세월이 가면서 세워두었던 돌도 없어지고 사람들은 또다시 그것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홍해가 마른 것이 아니라 발에 찰랑찰랑 닿을 정도의 얕은 곳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요단강도 역시 산사태가 나서 물을 잠시 막았고 그래서 건널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전파된 그리스도의 부활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가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했을 때는 아직 목격자들이 많이 살아있을 때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2)”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언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수차례 말씀하셨습니다(마 17:22-23). 그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고 특히 주님의 제자 중 도마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 그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았습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심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이 슬픈 기색을 띄며 이야기하기를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있었는데 죽었다며 슬퍼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핵심은 주님의 부활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여인들, 주님의 제자들, 주님을 만난 500여명의 사람들에게 주님은 자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처음에는 제자들도 믿지 못하고 주님을 볼 때 “우리가 지금 영을 보는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이 있느냐, 생선이 있느냐” 하시며 자신이 영이 아닌 부활한 몸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많은 증인들에 의해서 전파되고 들은 사람이 또다시 전하고, 그것이 기록된 성경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우리가 듣고 믿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고린도 지역의 사람들도 역시 그러했던 것입니다.

 

떠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의심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창조 이후로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누군가의 장례를 치르고 몇 주가 지났는데 그가 집에 나타났다면 어떨까요. 부활의 소식은 믿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파된 주님의 부활은 그것을 친히 목격한 사람들이 전한 것입니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의심하는 이유는 목격자들이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목격자들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믿기 쉬울 것입니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하자 도마가 말하기를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 그와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많은 경험들은 죽은 자는 살아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문 앞에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나의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눅 24:46-48, 눅 22:28-30, 행 2:32).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은 증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증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이유는 잘못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만들려고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종교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부활을 뺀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을 때의 우리의 비극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사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는 부활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무덤에 잠자던 자들이 살아났고 주님 역시 부활하셔서 산 소망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복음 전파가 무의미해집니다. 부활을 빼 버린다면 복음 자체가 아무 것도 없는 껍데기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암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로또 복권이 당첨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헛것이 되고 맙니다. 창세 이후에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인생을 바쳐 살아온 모든 사람의 믿음이 헛것이 됩니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부활을 빼버리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복음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모든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저 역시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사기꾼이 되고 맙니다. 저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그들 역시 사기꾼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갠지스 강에 가서 일 년에 한 번씩 자신의 몸을 씻고 자신이 속죄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보고 참 불쌍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불쌍한 자들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가장 믿기 힘든 사람이라면 아마도 주님의 열 두 제자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직접 주님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시지 않은 채 제자들이 단지 기독교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을 전파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 와서 거짓으로 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말한다 해도 자신의 양심은 진실을 말할 것입니다. 거짓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숨고 도망가던 제자들이 어째서 이후에는 담대함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처참히 순교 당했을까요. 바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만일 다시 살지 못했다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죄 가운데서 살았을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습니까. 어떤 방법도 소용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죄를 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몇 년 동안은 히말라야 산맥을 알몸으로 다니며 수도합니다. 그들이나 우리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똑같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사함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 잠자는 자들도 망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산 모든 사람들, 왕자의 칭호를 버리고 택한 모세의 모든 수고, 여호수아, 다윗, 많은 선지자들, 노아, 에녹, 구약의 신앙인들, 사도 바울, 베드로, 요한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망한 것입니다.

 

분명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모든 삶에 색깔을 부여하고 소망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으로 부활해서 하늘나라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벅찹니다. 호랑나비 애벌레에게 누군가가 와서 “너는 곧 나비가 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는 가능성이 희박한 그 사실을 믿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나비로 변하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래가 그에게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부활 때문에 우리 역시 영원한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것이고 신약에 와서 많은 이들이 목격한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고 했고, 요한도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요일 1:1-3)”이라고 했으며 사도 바울도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 -8)”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확실한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영광 가운데 부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론

 

사람을 일곱이나 죽였다는 사람이 최근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자손들이 그 수익금으로 살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정말 양심이 마비된 사람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은 이 땅에 있는 동안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지옥의 불못에서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하기 때문에 밝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아브라함과 모세 등 수많은 믿음의 신앙인들이 그들의 인생을 투자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의 이유도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하늘나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