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그리스도인의 애환
본 문 : 고린도 후서 6장 1절 ~ 10절
설교자 : 조 성 훈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애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주님을 닮아 가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의 삶에 즐거움, 슬픔, 고통이 함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 즉 동역하는 것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고, 특권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에 의해서 더럽혀진 온 우주와 세상을 멸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 다음에 이 땅에서 구원하신 사람들을 그곳에 두셔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일을 하고 계시고, 앞으로 이 일을 이루실 것이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현재 멸망해 가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함께 일하려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셨고, 동역자로 쓰고 계시며, 거기에 우리가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동역하고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오는 영광이 따르는 일인가 하면, 또한 어려움도 함께 오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생이 어려움을 당하면, 그 제자들도 어려움을 당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머리 속에는 매우 아름다운 꿈이 들어있습니다. 주님을 따름으로 인한 즐거움, 즉, 주님을 따르면, 공부 못하는 아이들도 잘 하게 되고, 집안의 사업도 잘 되며, 결혼도 잘 하게 되는 등의 장밋빛 꿈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는 자가 세상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합당치 아니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나를 따라오는 자가 자기 가족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합당치 아니하다.” 라고 말씀하셨고, 마지막으로 “자기 목숨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나를 따라올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 장사꾼과는 다릅니다. 장사꾼들은 약을 선전할 때, 그들은 모든 병이 나을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자신을 따라오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며, 쉬운 길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넓은 길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좁은 길은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께서는 만일 적군이 쳐들어온다면, 계산을 해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길 수 없으면 화해를 청하는 게 지혜로움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도 그 대가가 필요함을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신 분들은 잘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때이고, 지금은 구원받을 만한 때입니다. 이 때를 놓쳐버린다고 하면,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일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간첩들의 자수 기간이 있었는데. 그 기간에 자수하면, 모든 것을 불문에 붙였습니다. 지금들이 바로 죄인들이 하나님께 자수하는 기간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 나오면,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는 것의 첫 번째 의미는 바로 지금이 불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시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도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또는 봉사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어떠한 것인지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역자들에게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잠을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고, 수고를 하고, 매 맞음과 갇힘 등의 여러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9절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나와 있습니다.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움을 당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여러분들을 사랑한다고 하면, 이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면, 말씀대로 순종하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인들 가운데서 의롭게 살면 핍박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아가게 되면,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그 어떤 불의한 일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악한 세상은 의인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죄인들 가운데 의인들이 살아갈 때, 의인들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죄인들이 괴로운 것입니다. 빛이 세상에 비취므로 온갖 자기 자신의 더러움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을 괴로워했습니다. 그래서 그 해결책은 빛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 박은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악했기 때문에 싫어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들에게 행위가 악하다, 회개하라 는 등의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싫어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잘 한다고 하면 미워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삶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그들의 삶을 정죄하게 될 때 그들은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려움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실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핍박했는데 우리는 핍박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하리라.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가 주님을 따르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려움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면, “너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이상히 여기지 말라 이는 당연한 것이니...” 그리스도인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조금 전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에게 속했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기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우리의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따르는 어려움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적당히 살면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적당하게 하고 타협하는 삶을 살면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우리의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즉 복음을 전하는 일이 지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려움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살다보면 이웃과 한바탕 싸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성경책을 들고 가다가 싸우고 싶으니깐 “주님, 여기 잠깐만 계세요.” 하고는 성경책을 잠깐 내려놓고 싸우고 돌아와서 성경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참기 어려우면 그러겠습니까? 어떨 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참고, 참고, 또 참는데도 정말 한 번 쯤은 싸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참는 것은 복음이 훼방을 받을까봐 참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간증을 지켜왔는데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해 참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참는 것보다는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해 참는 것입니다. 하나는 주님을 생각하고 또 하나는 그 영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3절에서, “우리의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게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게 하지 않고...” 이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다 다르고, 각자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행동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부여받은 직분,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와 동역하는 일이 지장을 받지 않게 하려고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을 감당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1절에 보면,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왜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할까요? 바로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손해 보는 삶을 보고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고 속이 있고 성질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위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모독할 때 웃음으로 답변해준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우리의 오른 뺨을 칠 때 다른 뺨을 돌려 댄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줄 때 그는 진리의 말씀으로 대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고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의롭게 대하고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또한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뿐만 아니라 사단으로부터 오는 시험과 시련과 고통과 비웃음과 조롱을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아야 합니다.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이러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아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세상에서 잃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은 잃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얻는 것도 참으로 많습니다. 8절에 보면,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영광스러울 때도 있고 욕을 당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우리가 영광도 받고 수치도 당한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땅에서 받는 영광은 하늘에서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고 이 땅에서 받을 수치도 하늘에서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 땅에서도 영광을 받을 수 있지만 장차 하늘에서 받을 영광은 이루 형용할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보면 즐거울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게 되면 많은 세상 친구들이 등을 돌리고 우리를 떠나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두려워하여 주님께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면 세상에 속한 친구들이 떠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여전히 세상에 속한 친구들과 변함없는 친분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자연히 세상에 속한 친구들은 떠나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는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상이 나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한 것처럼 내가 세상을 멀리하고 믿지 않는 친구들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그들이 나를 멀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에겐 친구가 없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친구들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 안에서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모두 진실 된 친구들입니다. 저는 친구들을 만날 때 친구들이 저를 속일까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세상 친구들을 잃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그리스도 안의 친구들을 얻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잃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즐거움을 얻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재미없다고 여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즐거움을 세상이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데는 잃어버리는 것도 있지만 얻는 것 역시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얻는 것은 무궁무진하지만 이 땅에서도 많은 것을 얻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모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부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인데 이것은 참된 부자가 아닙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부자인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또한 우리는 비난도 받지만 칭찬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항상 비난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칭찬도 듣습니다. 또한 우리는 속이는 자 같이 보이지만 진실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하다보면 어떻습니까? 마치 보험회사 직원마냥 속이는 사람 취급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이는 자들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름이 없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라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4000년 전 즈음에 성경에 나오는 사람을 제외한 세계에서 제일 부한 자가 누구입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유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100년 전은 어떻습니까? 역시 모릅니다. 그런데 모세는 어떻습니까?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솔로몬, 아브라함, 바울...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까지 알려져 있습니다. 때때로 세상 사람들의 눈에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만 그것은 무지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명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천사들도 모두 우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께로 나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지금 하늘에서 하나님과의 대화의 화제가 누구입니까? 세상의 갑부도 아닌 신앙 안에서 하나님을 순수히 섬기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구가 속히 있는 은하는 수천억 개의 은하 가운데 하나이고 이 지구는 은하 속에서도 아주 작은 별에 속합니다. 이 지구 안에서 유명한 사람이 우주적으로 얼마나 유명하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우주의 소유자이신 하나님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유명세라고 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죽은 자 같으나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벌 받는 자 같이 보이지만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았고 우리는 슬픈 자 같이 보이지만 항상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속에 참다운 즐거움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세상에 그 누구보다도 부요함을 가진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목말라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실제로 세상 사람들은 물질에 목말라하지 않습니다. 그 목마름은 권력에 대한 것도 아닌 영적인 것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그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그들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에게 진정한 부요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참으로 위안이 되는 말씀이 있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하늘 나라에 간다면 주님께서 제게 중간 즈음 되는 우주를 하나 맡겨주실 것입니다. 그 은하 안에는 별들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일천억 개가 들어있습니다. 이 지구를 태양 안에 넣으면 무려 125만개의 지구가 들어가는데 이 태양을 수십억 개나 넣을 수 있는 별들도 아주 많습니다. 그런 별들이 일천억 개도 넘는 은하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지만 실제로 모든 것을 가진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가난하게 보이는 자이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요 여러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는 자요 슬퍼 보이지만 기뻐하는 자요... 바로 우리가 그런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도 고난도 어려움도 핍박도 조롱도 함께 가진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가야할 길이요 이것이 바로 주님을 닮고 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이 받아야 할 대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고 동역자들이라고 한다면, 두 가지를 기대해야만 합니다. 하나는 수치요, 다른 하나는 영광입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데에는 애환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신사를 위해 산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특권 중에 특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입니다. 동역자는 주님이 받는 고난도 함께 받고 주님이 받는 영광도 함께 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항상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지난 일년을 돌아보면서 우리 주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합시다. 지난 일년 동안 주님 때문에 수치와 고난도 함께 당했을 것이고 또한 즐거움도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도 여전히 고통과 어려움이 우리를 따라올 것이며 영광과 즐거움도 함께 따라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안식은 우리가 가게 될 하늘 나라에서 얻게 될 것입니다. 새해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인해서 오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서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주님을 닮고 주님을 따르는 데에 이런 어려움과 영광이 함께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러한 기대로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