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그리스도인의 자유
본 문: 고린도전서 10장 23-33절
설교자: 조 성 훈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이 주의 것임이니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으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 기독교가 싫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 안에 얼마나 많은 자유와 기쁨이 있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배경을 보면 고린도 지역에는 우상숭배가 심했기 때문에 우상에게 차려진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해 교회 안에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10:23)”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님께서 분명하게 금하신 것을 제외하면 많은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자유를 사용하는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한 예로, 어떤 사람들은 몸에 좋다고 해서 사슴을 잡아 그 피를 먹습니다. 물론 그것을 먹는다고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을 먹는 담대함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주로 개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그들은 개를 위해 냉방시설도 하고 개가 죽으면 기념집회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미얀마에서 싱가포르 형제와 함께 식사를 하다가 개고기를 먹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개고기인 것을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먹고 나서 사실을 말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다시는 그것을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개고기라는 것을 알려준 뒤 제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그가 보았다면, 그는 저와 함께 어울리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인 선교사와 함께 한 자리에서 굳이 보신탕을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우상 숭배라는 것이 끔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절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곳곳마다 흔한 것이 절이었고 어릴 때부터 늘 가보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외국에서 온 형제를 데리고 절에 갔더니 매우 무서워하고 당장 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고 해서 굳이 그 자유를 사용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지만 그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사용할 때 그것이 사람들에게 덕이 되는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자신의 자유를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저희 집에 키우는 개를 위해 백만 원짜리를 옷을 사다 입혔다면 성도들이 보기에 어땠을까요? 돈 많은 사람에게는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거리낌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나온 뉴스를 보니 어떤 여자가 4억을 자신의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그런 자유가 있는데 왜 사람들이 분개하는 것일까요? 그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위화감을 주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자유가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거리낌을 주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10:23, 24)”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문화와 자유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이 주의 것임이니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10:25-28)” 여러분이 저를 집에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할 때 제가 “이것을 어디서 사왔냐, 제사상에 차려진 것은 아니냐”하며 꼬치꼬치 물어본다면 어떨까요? 고린도 교회 당시에는 제물로 차려진 음식들이 시장에서 많이 팔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에 강하게 매여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민감한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것을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누가 그것이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이라고 말하면 그 때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괜찮지만 그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를 위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을 절대 먹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사는 한 형제가 있다고 합시다. 어느 날 존경하는 형제님의 집에 갔더니 그는 가끔씩 먹는다며 술을 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배우고 돌아와서 그날부터 술을 먹기 시작했다면, 그래서 그의 신앙이 무너졌다면 큰일입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자유함과 담대함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양심에 얽매여 연약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어린 사람일수록 자기 중심적입니다. 장성한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고려합니다. 하다못해 냉장고를 살 때도 다른 사람을 고려합니다. 연약한 그리스도인을 고려해서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먹거나 조심하는 것, 그들을 넘어지게 하는 일이 생길까봐 조심하는 것입니다(고전 8:9-13).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저도 그렇지만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을 자신 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제물로 사용하는 과일과 음식 치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물로 차렸던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사단의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음식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딤전 4:3-5). 그러나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있을 때는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자유의 조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10:31)”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롬 14:6-8). 다른 성도들을 세워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어디를 가든지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있을 때 자제하는 것이 성도를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자유의 결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10:32, 33)” 우리의 모든 자유의 결과가 이와 같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 마음에 거침이 되게 하지 말라는 것은, 그것이 연약한 자를 넘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그가 구원을 얻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게 하고 그들로 구원을 얻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이고 우리를 통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일을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덕이 되고 사람을 세우는 일은 아닙니다.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이것이 우리가 사는 목적입니다. 주어진 자유를 주님과 그의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