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
본 문: 빌레몬서 1장 4절~7절
설교자: 조 성 훈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일반적으로 교제는 사귐,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데, 크게 하나님과의 교제와 성도들과의 교제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을 때, 진정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과의 교제는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고, 또 그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와 임재를 체험하면서 하나님과의 사귐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청년이 한 여인과 교제를 하면서 일년에 몇 번 만나지도 않고, 편지도 거의 주고받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이들이 연애를 한다거나,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을 때, 우리는 진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남이 알 수 없는 친밀한 사귐이 있고, 나눔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힘이 있고, 기쁨이 있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얼굴에 기쁨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그들의 삶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주님과의 사귐이 늘 있다면, 우리 삶은 늘 기쁨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교제
성도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교제는 여러 가지 있는데, 영적인 교제, 물질적인 교제, 삶을 나누는 교제 등이 있습니다. 영적인 교제는 믿음의 교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몬 1:6), 이는 먼저 영적인 양식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에게서 받은 위로와 격려를 나눔으로 성도를 세우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 미얀마에서 있었던 세미나에 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듣기 원하는 마음으로 세미나에 오기 위해 자신의 하나뿐인 오토바이를 팔아서 그 돈으로 온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속에 참으로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 앞에 더욱 나아가게 하고, 힘을 얻게 하고,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러한 간증이 부족합니다. 간증 집회 시간에 나눌 간증이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오토바이를 판 형제님의 간증은 우리에게 “신앙은 대가없이 절대 성숙할 수 없다.”는 교훈까지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증, 성도들과의 교제에 대한 갈증이 그로 하여금 그에게 중요하고, 꼭 필요한 오토바이를 팔게 했던 것입니다. 말씀과 교제에 대한 갈증이 있는, 살아있는 그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간증을 서로 나누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기쁨과 소망, 어려움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기쁨과 소망을 함께 나누면서, 영적인 축복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기쁨 뿐 아니라 우리가 당한 어려움도 함께 나누면서, 서로를 통해 위로를 받고,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교제인 것입니다. 한편, 교제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서로 나누는 것이며, 서로에게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외로움을 호소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교제가 그들 가운데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물론, 성도들 간에 이루어지는 믿음의 교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교제
초대 교회를 살펴보면, 그들이 믿음을 나눴을 뿐 아니라, 물질을 함께 나누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있었던 세미나가 끝난 후 형제들과 교제를 하고 있을 때, 한 목회자가 제게 와서 악수를 청하더니, 악수를 하면서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1000 젯(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 정도 되는 돈)을 제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1000원이란 돈은 물론 큰 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게 쥐여준 1000원이란 돈은 제게 수천만 원보다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그 작은 지폐 속에 묻어져 나오는 마음, 그것이 바로 교제인 것입니다. 단순히 물질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성도들에게 “너희의 풍부한 것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라.”고 말했습니다.(고후 8:13-14) 물질을 나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물질적인 어려움을 도와준 것에 감사의 표현을 했습니다.(빌 4:12-14) 내가 물질적으로 풍부할 때, 어려운 성도들을 돕는 것은 사귐이요, 교제입니다. 이러한 사귐이 없을 때, 역시 진정한 교제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가 헐벗고 굶주리고 있고, 자신은 여유로운데, 그 성도를 돕지 않는다는 것은 그 안에 사랑이 없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매월 사용하고 있는 물질 중에서 형제자매들과 나누는, 사귐의 물질이 얼마나 있는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적은 것이지만, 서로 물질을 나누고, 마음을 나눌 때, 큰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교제가 바로 이러한 사귐입니다. 적은 것이지만, 그것에 형제자매의 사랑을 실어 보낼 수 있는 사귐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삶을 나누는 교제
교제는 마음을 여는 것이요, 자신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다들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며,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깊은 교제를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 교제의 시작입니다. 물론, 상대방의 열린 마음에 화살을 쏘는 것은 교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보내는 것, 서로의 열린 마음에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교제이며, 마음을 통한 사람을 만나는 길입니다. 나의 진실을 감춘 채 상대방과 교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서로의 마음을 열고, 속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서로를 세우는 교제여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위로와 삶에서 일어나는 어려움과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은 공통점이 참 많습니다. 직장 생활의 어려움, 가정의 문제, 등등 공통적인 요소들이 참 많기 때문에, 그러한 삶 가운데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서로 나누면서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요, 각 지체이기 때문에 교제가 필요합니다. 또 소통해야 합니다. 손과 발이 서로에게 비밀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몸은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며, 서로를 신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이와 같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서로의 기쁨과 고통에 대해 무지하지만,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기쁨을 나누었으며, 고통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그의 괴로움에 참여했다고 말합니다. 서로의 무거운 짐과 고통을 덜어주며, 함께 나누는 것이 교제인 것입니다.
교제의 결과
본문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몬 1:6-7)” 사도 바울은 교제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며, 평안함과, 기쁨, 위로를 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제는 상처를 주기 위해 나누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며, 그것은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또한 기쁨을 나누는 것이요, 이는 그 기쁨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로 인해 성도들은 평안함과 기쁨, 위로를 얻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결론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교제한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나누는 것, 즉 내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살아가면서, 주님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많은 역사들, 그 실패와 성공, 기쁨과 슬픔 등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내게 주신 물질을 어려운 이와 함께 나누는 것 역시 교제입니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낭비하는 돈이 어려운 나라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성도들의 한달의 생활비일 수도 있습니다. 교제는 마음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물질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사귐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며, 물질을 나누는 교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교제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 안에서 선을 알게 합니다. 형제, 자매들과의 교제와 나눔을 통해서 주님을 향한, 또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이르게 하고, 마음에 평안함을 주며, 위로와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 이러한 교제로 우리가 주님 오실 때까지 서로를 붙들어주고 격려하며 세워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