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명
본 문 : 롬 5:12-21
설교자 : 조 성 훈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많은 사람들의 범죄 때문에 이른 은혜)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함이니라”
세상에 태어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영향을 미쳤으며, 세계적으로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슬픔을 가져다 준 히틀러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두 분류로 나누어본다면, 한 분류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요, 또 한 분류는 나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사람들 중에 좋은 쪽으로, 또 나쁜 쪽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을 뽑는다면, 그것은 바로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일 것입니다. 아담은 그 어떤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악영향을 인류 전체에게 미친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와 반대로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바로 이 두 사람,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담 안에서는 사망을 발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을 발견합니다. 둘째로, 아담 안에서는 무거운 짐을 발견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쉼을 발견합니다. 셋째, 아담 안에서는 목마름을 발견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수를 발견합니다. 넷째, 아담 안에서는 율법 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은혜 안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다섯째, 아담 안에서는 지옥에 가야하는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된 자신의 운명을 발견합니다. 이 외에 이 두 사람은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두 사람을 대조하면서, 이 두 사람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두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과 그 결과
12절 말씀에서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세상에 들어와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결국 인간은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죄와 사망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죄와 사망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의 단 한번의 불순종으로 인해 죄와 사망이 들어왔고, 사망으로 인해 인간의 모든 불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는 율법이 있기 전에도 있었습니다.(13절) 다만, 율법이 있기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이 있기 전의 사람들에게도 사망이 왔다는 사실에서 증명됩니다. 사망이 왔다는 것은 바로 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율법이 있기 전에도 사람들에게 사망이 왔다는 것은 그들 역시 죄를 지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죽음에 의해 지배당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히 2:15) 또한 고전 15:55-56에서는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의 법이 있기 때문에 죄가 존재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사망이 있는 것인데,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해방된 이후에는 사망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과 그 결과
사도 바울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15절)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류가 죄와 사망을 맞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아담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리고, 어려움을 겪고,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반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선물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것입니다.
16절에서는 범위 또는 넓이에 있어서의 대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많은 사람들의 범죄 때문에 이른 은혜) 하심에 이름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는 많은 사람들의 범죄 때문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역시 한 사람(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모두에게 정죄함이 이르렀지만, 그 많은 범죄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메시아를 준비하셨고 그 메시아의 한번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된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한 결과는 정말로 참담합니다. 그 행위의 결과는 우리의 소망과 우리의 행복을 모두 빼앗아갔습니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생각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 되었습니까? 태어나면,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공부를 시작하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등 얼마나 많은 고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너무도 불행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죄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때로는 욕심 때문에, 질투심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우리가 육체를 입고 있는 이상 이러한 괴로움의 탄식 가운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사망 후의 인간의 운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원히 멸망하는 지옥입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온 인류가 죄와 사망의 고통을 받게 되었지만, 성경이 또 한 가지 말하고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도 이와 비슷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번의 순종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되었지만, 또 한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지 않으면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로 감사가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인류의 새로운 대표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서 인간으로서 많은 시험을 받으셨지만, 그분은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으로 인해 모든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영원한 생명, 진정한 기쁨, 참 평안, 영원한 영광 등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17절) 왜냐하면, 사망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가는 하나의 통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할지언정 죽음 자체와 죽음 이후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20절에서는 율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이 가입한 것은 죄를 더하게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는 자에게 교통 법규를 설명해주면, 어떻겠습니까? 정말 한번도 교통 법규를 어기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율법은 이처럼 죄를 드러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율법 자체가 죄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율법은 우리의 죄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죄악보다 더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래서 구원받은 우리는 더 이상 죄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육체의 연약함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들입니다. 물론, 육체의 죽음은 있지만, 더 이상 사망이 왕 노릇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곳, 천국은 슬픔과 고통, 죽음이 없고, 즐거움과 기쁨만 존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사망이 왕 노릇하지 않고, 은혜가 왕 노릇하고, 생명이 왕 노릇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아담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모두 비극적인 것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인해 사망이 우리에게 존재하게 되었으며, 또 그 사망으로 인해 우리는 온갖 고통과 슬픔을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은 탄식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영혼은 해방되었습니다. 우리 영혼은 이미 은혜 가운데 있고, 생명 가운데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사망에서 벗어났고,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가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의 육체 가운데 해방되면, 우리는 생명 가운데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복된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은 정말 너무도 감사할 일입니다. 아직 아담이 전해준 죄와 사망, 고통 가운데 계신 분들은 그것들에 계속해서 종노릇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선포된 자유 가운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은혜 아래서 마음껏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이 받은 소망 가운데 기뻐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