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편] 10강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소서

2019년 May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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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소서"

물에 빠지거나 죽어가고 있거나 위경에 처하거나 낙심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그것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런 일이다. 거기에는 아무 의미 없이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형식적인 기도의 모습은 일절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기도는 양심이 잠을 자는 가운데 서둘러 이행되는 지루한 의무가 아니다. 오직 그분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에 깊이 짓눌려 있는 심령 깊숙이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께 대한 필사적인 외마디가 있을 뿐이다. "오 하나님,나를 도와주십시오!"가 더 이상 기도하기에 너무 바쁘지도, 너무 만족하지도, 너무 믿음이 없지도 않은 사람들의 외침이다. 그들은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줄 사람을 찾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기도할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그들의 규칙적인 영적 생활 중 기도생활이 가장 미약한 부분이라고 고백한다. 그들은 영적인 사역의 성공은 기도에 달려 있으며, 그 실패는 기도의 결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기도를 하고는 있지만 기도의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기도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

제자들은 그들 가운데 기도가 부족함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부탁했다(눅 11:1). 이 요청은 그들이 기도의 사람이신 그분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본 후 제기된 것이었다. 그들은 그분께서 날마다 끊임 없이 기도에 의존하시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분은 아버지의 얼굴을 구하기 위해 날이 밝기 전에 일찍 일어나셨다(막 1:35). 때때로 그분은 밤을 지새워 기도하셨다(눅 6:12). 그분은 제자들 및 다른 사람들의 축복을 위해 기도하셨다(요 17장). 그분에게 있어 기도는 긴급 처방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다. 그분은 제자들이 기도하기를 원하셨으며,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눅 18:1). 그분은 말과 행실을 통해 날마다 기도를 가르치셨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마 7:7). 이 말씀은 강도를 높여 가며 지속적으로 구할 것을 시사한다.구하고 또 구하라. 찾고 또 찾으라. 두드리고 또 두드리라. 그분은 이 가르침을 밤중에 집요하게 문을 두드리며 간청하는 한 친구의 실례로 설명해 주셨다(눅 11:5-9).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자유롭게 부르라고 항상 신자들을 초청해 오셨다(렘 33:3). 주 예수님은 이 초청의 폭을 넓히고 강도를 높히셨으며, 초청자를 자기 자신과 연결시키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 이 초청은 거의 믿을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말을 할 수 없으시다(딛 1:2). 그분의 말씀을 받지 않는 것은 그분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것이다(요일 5:10). 모든 죽을 인생은 거짓말장이지만 하나님은 진실하시다(롬 3:4). R.A.토레이는 "기도를 한다는 것은 은행,곧 우주에서 가장 큰 은행인 하늘 은행에 가는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하나님과의 대화

기도란 무엇인가? 우리 주변에는 널리 알려진,그러나 잘못된 기도에 관한 여러 견해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기도를 단순히 심리학적인 활동으로 간주한다. 어떤 의료 단체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심리적인 안정과, 일부 질병의 병세 약화 및 치료 속도 촉진에 미치는 기도의 효과를 관찰해 본 후 그것을 신체에 미친 정신 신체학적인 효과로 간주했다. 또 어떤 이들은 기도를 감정의 버팀목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만일 당신이 기도가 당신을 도와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라고 흔히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기도를 미신으로 취급한다.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들에게 기도는 마술과 같아서 마법사에 의해서 행해지든 사제나 종교적인 사기꾼에 의해서 행해지든 효과는 마찬가지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하기보다는 하나님을 향하여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한다. 그들은 기도를 기계적인 주문 암송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상의 개념들 중 어느 것도 하나님의 능력을 흘러나오게 하는, 인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참 하나님과 교통하는 의미를 나타내 주지 않는다. 이러한 견해들은 하나님을 듣고,개입하고,그리고 기도의 결과로서 행동하시는 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기도는 성경에 나타난 그분에 대한 계시에 기초해서, 그리고 그분에 대한 접근과 그에 대한 그분의 반응을 지배하는 영적인 원칙들에 입각해서 하나님과 함께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혼을 높이 드는 것이요(시 25:1), 심령 깊숙이 부르짖는 것이다(출 2:23; 시 5:2; 18:6). 카메롱 톰슨은 이렇게 말했다: "기도는 사정을 알고 이해하고 돌보고 응답하시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눈길 앞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의 무력함과 다른 사람들의 무력함을 토로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구하는 영혼의 숨결과 헐떡거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망설이심을 극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분의 원하심을 사로잡는 것이다. " 기도는 "하나님의 보물 창고를 여는 열쇠"라고 불려왔다. 그것은 그분께 우리의 필요를 알리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그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마 6:8; 눅 12:30). 그것은 그분의 영원한 목적들을 변경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기도는 사실 진정한 믿음의 활동이다. 놀랍게도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로잡도록 허락된 수단이다(사 64:7). 때때로 우리는 기도를 단지 구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실상 그것은 훨씬 더 범위가 넓다. 단지 구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대화나 교제가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기도의 중요한 측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1. 경배.
우리는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라는 고백을 보게 된다(시 100:4). 이보다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더 좋은 방법이 있겠는가? "하나님을 찬양하라", 혹은 그 히브리어 표현인 할렐루야는 시편의 특징적인 문구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요 4:23). 예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와 관련이 있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느냐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신자들이 이 사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기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시 96:8).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magnify)"라고 노래했다(눅 1:46). 찬양한다는 것(To magnify)은 크게 높이는 것, 혹은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이다(시 34:3). 당신의 찬양에 생명력을 더하기 위해 그분의 속성을 깊이 연구하도록 하라.

2. 감사.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때 찬양 다음에 따르는 것은 감사이다(시 100:4; 95:2). 하나님께서 베푸신 많은 축복들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않은 세상은 배은망덕한 상태 속에 살고 있다(롬 1:21). 한번은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 병자를 고쳐주셨으나 한 명만이 감사를 표했다. 그분께서 물으셨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 우리는 주님 앞에 이르러 "그것들을 하나씩 헤아릴 때" 우리가 받은 많은 축복들에 재삼 놀라게 될 것이다. 주님 안에와 그분의 백성의 교제 안에는 영육간의 풍성한 축복들이 있다. 물론 어려움들도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축복을 위해서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일하고 계신다(롬 8:28).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권면을 듣고 있다(살전 5:18; 엡 5:20 참조). 감사는 그 이상의 축복을 위한 길을 예비시킨다.

3. 자백.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더럽히는 어떤 것도 그분과의 교제와 우리의 기도생활에 방해가 된다(시 66:18). 이러한 죄들은 자백되고 버려져야만 한다(잠 28:13). 우리는 죄악된 생각과 행동들을 물론 마땅히 해야될 일들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옵소서"라고 호소했다(시 139:23). 우리는 성령과 동행하기 위해서 마음을 깨끗게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로의 접근은 죄에 대한 의식을 증가시킨다(사 6:5). 당신이 당신의 죄와 실패를 정직하게 자백했다면 그분의 용서를 마음에 받아들이라(요일 1:9).

4. 중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기도가 상황을 변화시킨다는 확신은 우리를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고무시킬 것이다. 중보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기도"로 불린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훌륭한 중보자였다. 우리는 그의 기도가 그의 누이 미리암과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보호해주도록 영향을 미친 일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민 12:1-13; 출 32:7-14). 우리 주 예수님은 친히 아버지 곁에서 날마다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리고 계신다(히 7:25). 신약성경의 서신들은 교회와 개인을 위한 중보기도로 가득 차 있다. 충실한 중보기도자들은 기도목록을 작성하여 주님 앞에서 계획을 갖고 기도를 드린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불신자들, 병든 자와 고난 당하는 자들이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 밖에 세계 선교를 위해 수고하는 자들과 같은 커다란 기도 제목들이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마 9:37-38).

5. 간구.
매일의 필요들이 주님께로 가져가져야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그것들에 대한 염려로 먼저 채워져서는 안된다(마 6:11,25-34). 물질적인 필요보다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구한다든지(시119:34) 아니면 죄와 사람의 압제로부터 해방되기를 구한다든지(시119:133-134) 하는 영적인 문제들이 더 중요하다. 또한 우리는 매일의 의무와 중대한 결정을 하는데 있어 인도를 받을 필요가 있다. 참새가 떨어지는 것을 아시며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그분께서는 어떤 문제도 기도하기에 너무 사소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다(마 10:29-31).

기도의 조건

기도는 반드시 진리를 따라서, 기도의 원칙, 조건, 혹은 법칙을 따라서 드려져야 한다. 이 원칙들은 성경에 진술돼 있으며, 우리가 어릴 적부터 상상하고 느끼고 배운 것들과 차이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고 확실히 기대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특권임을 기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께서는 요구하고 불평하는 심령이 아닌 겸손하고 상한 심령을 받으신다(사 66:2; 시51:17). 교만, 혹은 오만은 어떤 형태를 막론하고 그분을 매우 거스리는 것이다(삼상 2:3; 15:23). 그러면 기도가 어떤 면에서 우리의 복스런 특권이 되는지를 살펴보자.

1.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
신자들은 다른 방법이 아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갈 3:26).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 속에는 성령이 내주해 계신다. 모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불순종과 진노의 자녀들이다(엡 2:1-3).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오직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만 그러하다(히 10:19). 그것은 모든 사람의 권리가 아니다. 예수님은 외인들에게 자녀들의 떡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다(마 15:26; 막 7:27).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드려져야 한다(요 14:13-14; 15:16; 16:23-26).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께로 나올 수 없다(요 14:6).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이것은 그분이 원하시는 누구에게나 반응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권리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속해 있다."예수님의 이름으로"는 기도의 끝에 고정적으로 붙은 주문적인 문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접근의 근거, 즉 우리는 우리의 의지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분의 성품과 소원에 일치하는 것을 그분 앞에 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상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든 것을 지배하도록 그리스도의 영의 역사를 요청하는 것이다. 그분의 이름으로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자!(엡 3:12)

2. 믿는 자의 특권.
먼저 다른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고 모두 실패한 후에 그분께 기도하기 위해 나아오는 자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매우 적게 마련이다. 기도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들의 진정성에 대하여 요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은 그분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자이다. 그러한 자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불리운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7). 주님은 그분의 능력을 올바로 평가하지 못한 신실치 못한 제자들을 꾸짖으셨다(마 17:17; 눅 9:41). 의심은 하나님의 능하신 역사들을 중단시킨다(마 13:58). 겨자씨만한 믿음도 올바른 대상인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속에 뿌리를 내릴 경우에는 산을 옮기는 믿음이 된다(마 17:20). 주님은 때때로 사람들에게 그들이 구하는 것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느냐고 물으셨다. 그 때 그들이 "예"라고 대답하면 그분은 "네 믿음대로 될지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그 결과를 보았다(마 9:28-30). 그분은 자식의 병을 치료해주기를 구하는 한 아비에게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그 사람이 "내가 믿나이다.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그 사람의 기도대로 그 아이를 치료하여 돌려 보내셨다(막 9:23-24). 또한 백부장은 기도에 관해서 아는 바가 없었지만 그의 믿음은 올바른 것이었다(눅 7:2-10). 믿음 없이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히 11:6). 당신은 응답을 기대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굳이 구하지 말라. 믿음의 기도로서 아버지께 나아가도록 하자(약 5:15).

3. 자발적인 자의 특권.
하나님의 선하심과 온전하심은 그분께 그들의 몸을 드리는 자들을 축보하실 것이다(롬 12:1-2). 먼저 우리가 그분의 뜻을 받아들일 때 그때 우리는 그 뜻대로 기도할 수 있다(요일 5:14-15). 우리는 어떻게 성경에 뚜렷이 명시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성경의 뚜렷한 약속들과, 우리가 따를 수 있는 원칙들과,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명령들과, 그리고 우리가 주의할 수 있는 경고들 속에 계시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우리는 자만하거나 잘못 구하지 않게 된다(약 4:3).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어떤 기도를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잃어진 자들을 그리스도께 아뢸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들 모두 구원받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벧후 3:9; 딤전 2:4). 신자들의 기도와 잃어진 자들의 구원 사이에는 밀접한ㅇ 관계가 있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라. 병든 자들을 위한 기도는 어떠한가?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가 기도하면 그들 모두를 고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스런 자녀들의 일부는 그 사실을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고후 12:8-9), 드로비모(딤후 4:20), 에바브로디도(빌 2:25-30), 디모데(딤전 5:23) 등의 경험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 모두는 몸에 질병을 지닌 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만일 치유가 하나님의 모든 자녀의 권리라면 아무도 질병으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을 고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았다. 믿음의 기도는 여전히 병든 자를 고쳐줄 수 있다(약 5:15). 만일 주님 앞에서 우리가 치유가 그분의 뜻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그대로 기도할 수 있다. 우리가 어디에서 살며, 어디에서 일하며, 어디로 여행하며, 어디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해야 하는가와 같은 환경적인 결정들을 위한 기도는 어떠한가?(약 4:13-15) 우리는 그분의 뜻을 기꺼이 행하고자 하는가?(눅 22:42)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받아들기를 원하는가?(잠 11:14) 우리는 어떤 행동에 대해서 평안을 가지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자 하느가? 우리는 그분의 표준을 기초해서 결정하고자 하는가?(마 6:33) 그렇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잠 3:5-6). 기꺼이 그분의 뜻을 행하도록 하자(요 7:17).

4. 순종하는 자의 특권.
하나님 보시기에 흠없는 상태를 갖출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죄는 하늘을 놋이 되게 한다(신 28:23). 반면에 모든 면에 있어서의 적극적인 순종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가져 온다(사 1:19; 렘 7:23). 주 예수님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순종을 행하셨다. "나는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고 그분은 말씀하셨다(요 8:29). 그분이 드리는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었음을 기억하고, 우리도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을 받을 수 있도록 그분 안에 거하도록 하자(요 15:7).

기도에 대한 응답들

만일 우리가 이상의 조건들을 갖춘다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까? 그 대답은 긍정이다. 한편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은 여러 방법으로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레만 슈트라우스는 그 응답들을 직접적인 응답, 지체된 응답, 상이한 응답 및 거부된 응답의 네가지로 분류했다. 여기에 구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손해의 응답을 추가할 수 있다.

1. 직접적인 응답.
이것은 교회가 기도하는 동안 베드로가 옥에서 풀려난 일(행 12:5-11), 처음에는 하늘을 닫게 하고 그 다음에는 하늘을 열게 한 엘리야의 기도(약 5:17-18) 등에서 볼 수 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그의 기도에 응답하신 일을 즐거워했다(시 116:1-2).

2. 지체된 응답.
이것은 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수많은 신자들의 기대에서 엿볼 수 있다(계 22:30). 그 때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주 예수님께 속히 오셔서 그들의 오라비를 고쳐주실 것을 간청했으나 그러나 그분은 나사로가 죽기까지 지체하셨다(요 11:3-6,14-15). 이러한 지체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써 보다 큰 이적을 행하실 기회를 그분께 제공했다.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종종 쉽지 않으나 그러나 반드시 보상이 주어진다(시 69:3; 37:7,9,34).

3. 상이한 응답.
이것은 우리의 요구 대신 하나님의 최선의 처방이 주어지는 경우를 가리킨다. 주님께서는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는 것보다 바울을 위한 더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고후 12:7-9). 그것은 그분의 족한 은혜였다. 주 예수님의 겟세마네에서의 기도는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것이었다(마 26:39). 이에 대한 아버지의 응답은 그분의 아들의 흘린 피를 통한 수많은 잃어진 영혼들의 구원으로 나타났다.

4. 거부된 응답.
이것은 절망과 연약에 빠진 때에 발해진,죽음을 구한 엘리야의 간구 속에서 엿볼 수 있다(왕상 19:4-5). 그 대신 그는 힘을 얻고 회복되었다.제자들은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사마리아인의 마을들을 사르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주님은 그들을 멸하는 대신 구원하러 오신 것이었다(눅 9:54).

5. 손해의 응답.
이것은 하나님을 거절하고 왕을 구한 이스라엘의 불평에 찬 요청과(삼상 8:5-18), 비극의 날들로 나타난 히스기야의 죽음 연기 요청(왕하 20:1-6)에서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시되 우리의 영혼을 파리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뜻 안에서 기도하기를 더욱 힘쓰도록 해 준다(시 106:15).

응답 이외의 기도의 축복들

1. 영적인 힘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영적인 힘을 얻게 된다(사 40:31).

2. 영적인 거룩함.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신 주님의 요청에 주의하는 사람은 자기 영혼을 거룩하게 보존하게 된다(마 26:42; 6:13).

3. 영적인 충격.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반대자들에게 대답하고자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할 때 우리의 사역에 영적인 충격이 따르게 된다(행 4:29-31; 6:10).

4. 영적인 시각.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영적인 사귐은 우리의 영적인 시각을 열어주고 그분과 그분의 방법을 아는 우리의 지식을 깊게 해 준다(행 10:9-35).

5. 영적인 조명.
우리가 그분께 그분의 말씀과(시 119:18), 우리가 마땅히 가야할 길(시 119:105)을 깨닫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달라고 간구할 때 우리는 영적인 조명을 얻게 된다.
우리가 나아가는 대상되신 분의 무한한 원천을 기억하라.그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실 수 있다(빌 4:19).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 18:27). 그분은 우리 마음에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는 도전적인 질문을 하고 계신다(렘 32:37; 창 18:14). 만일 우리가 믿고 의심치 않을진대 그 대답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