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말세의 징조
본 문: 디모데후서 3장 1-9절
설교자: 조 성 훈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임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1)”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이 받았던 어려움들을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6-38)”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지키려고 할 때는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아본 분은 없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 4:11-13)”
왜 사도 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데 그리스도인이 고통을 받는다고 했을까요. 그들이 우리를 칼로 찌르지도 않고 토굴에 가두거나 재산을 뺏지도 않는데 우리는 왜 고통을 당할까요. 많은 핍박은 오히려 신앙을 순수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재산을 빼앗기고 톱으로 켬을 당하는 등 핍박을 당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순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주어지면 신앙은 차츰 세속화 되어갑니다. 이것이 말세의 징조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2-3)”
말세에 진실한 신자들에게 고통을 가져오는 원인들
오늘날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 읽는 책들은 모두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존중히 여기며 자신의 꿈을 이루라는 내용들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도 교회를 다니면 하는 일이 잘되고 부자가 된다는 복음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7-8)” 진정한 신앙은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새벽에 한적한 시골길을 차를 타고 가다보면 교통신호를 지키는 사람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 시간에 내가 신호를 지키기 위해 서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바라볼까요. 모든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는 데 신호를 지키고 있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모든 사람이 자기를 위해 사는 데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를 핍박하거나 위협하지도 않는데, 재산을 빼앗거나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교회 안에 함께 주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5)”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단의 방법은 핍박하는 방법이 아니라 물타기 방법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맛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이 세상의 문화는 자랑하는 문화인 것 같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이 자랑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5천 만 원짜리 비싼 옷을 입고 사막을 걸어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어 자신을 높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분을 자랑하며 내 자신을 낮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안에도 그들과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참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세상에는 감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불평불만이 가득합니다. 내 본성은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하는 쪽이 훨씬 편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소욕은 감사하고 기뻐하고 격려하며 세우기를 원하지만, 반대로 육체의 소욕은 훼방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치 않으며 거룩하지 않은 것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살면 우리가 고통스러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벧후 2:7-8)” 롯이 소돔성에서 사람들이 죄를 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상했던 모습을 봅니다. 죄악된 세상을 바라보면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속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5)” 오늘날 기독교의 진리는 불신자에 의해 거부되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거부되는 것이 많습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부인되는 곳은 다름이 아닌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고 모세가 홍해를 건넌 것을 우화라고 말합니다. 교회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보면 목사 자신이 성령이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기독교가 어디로 가야 하나님을 참답게 섬길 수 있는 지 갈등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도 시대처럼 교회를 핍박하고 믿는 자의 재산을 압수하며 고통을 준다면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날은 술집에서 술을 파는 사람이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고, 동성연애자들이 십자가 귀걸이를 하고 다닙니다. 영적인 진리와 진정한 교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속고 고통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경건의 모양은 있어 권위와 진리가 있어 보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사람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내가 잘 살고 내 자식을 성공시키는 것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주를 위해 사는 사람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라고 가르칩니다. 기독교는 자기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입니다.
100억을 가진 사람이 13평 전셋집에 살지 않습니다. 윌리엄 맥도날드 형제님이 존경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 분은 수입이 많았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13평 아파트 셋집에서 헌 중고차를 타고 사셨습니다. 재산이 많지만 돈을 사랑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감사하지 않는데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약한 희생자들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6-7)” 사단은 항상 삼킬 자를 찾아다닙니다. 연약한 자를 유인해서 진리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교회에도 중심적인 교제권에 들지 못하고 외부에서 겉도는 사람들은 사단의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사단의 첫째 목표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더 이상 주님을 위해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절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면서 나중에는 멀리 가지 마라, 남자들만 가라, 애들은 두고 가라, 재산을 두고 가라 등 조금씩 타협하는 모습을 봅니다. 사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씩 세상과 타협하게 하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 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7-8)” 얀네와 얌브레는 구약에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유대의 구전에는 이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마술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진리를 왜곡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에서 멀어지도록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결론
오늘날의 어려움은 구약시대의 신앙인들이나 초대 교회 시대의 사도들이 받은 어려움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우리는 지금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신앙을 지키며 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계 2:25)”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감사지 않으며 훼방하고 비방하는 세상에서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고 하늘에 재물을 쌓으며 성도를 사랑하고 사는 것, 이것은 고통입니다. 우리에게도 역시 그들과 같은 생각과 욕구가 있는데 그것을 사로잡아서 주님 앞에 복종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고통스럽지 않다면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방향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습니다. 비록 여러분 주위에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따르지 마시고 그리스도와 하늘을 바라보고 사시기 바랍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주님이 오실 날이 임박했습니다. 신앙생활이 고통스럽더라도 조금만 인내하시고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