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전파하라

2008년 December 28일 ()

본문: 디모데후서 4:1-5 |

주 제: 말씀을 전파하라

 

본 문: 디모데후서 4장 1-5절

 

설교자: 조 성 훈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사도 바울이 그의 사역의 끝부분에 이르러 기록한 디모데후서는 그의 유언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세상에 두고 떠나면서 그가 맞게 될 험난한 세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일꾼으로서 그의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 디모데전후서를 통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는데 만일 하나님을 인터뷰한다면 어떨까요.

 

사도 바울은 전장(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에 나타날 현상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을 하고, 본문에서는 디모데를 비롯한 후세대 사람들이 맞게 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전파에 대한 명령

 

사도 바울은 먼저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1-2)” 여기서 “말씀”이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데 하나는 “복음”이고 또 하나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행 20:27)” 말씀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모든 교훈을 성도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줄어들고 음악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추세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말씀을 오래 듣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엄히 말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권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그는 이 말에 하나님의 권위를 싣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부터 온 명령과 같은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쓰라”는 말은 기회가 있든지 없든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도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두고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내가 명한다(1)”는 말씀에서 “심판”은 첫째로 성도들의 심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한 모든 일들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값 주고 사셔서 우리의 남은 삶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 물질, 시간, 건강 등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분명 주님은 우리의 재물과 시간, 우리의 육체를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또 하나의 심판은 민족의 심판입니다. 휴거된 이후 7년 대환란이 끝나고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양과 염소를 나누듯 천년왕국에 들어갈 사람을 나누게 될 심판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불신영혼들이 지옥의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게 되는 백보좌 심판을 주님이 주관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말씀 전파의 방법(책망하고 입증하고 권고하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2)”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는 오래 참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전하다보면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 말씀을 전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것을 받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해본 사람들은 이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진리를 반대하고 불평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경책하라(reprove)”는 잘못된 것에 대해서 진리를 제시하여 그들의 잘못된 것을 드러내고 보여주고 입증하라는 의미이고, “경계하라(rebuke)”는 잘못된 것에 대하여 책망하고 꾸짖으라는 것이며, “권고하라(exhort)”는 어떤 일을 하도록 격려하라는 의미입니다. 진리를 증명해야 하고 책망해야 하며 격려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 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살전 5:14)”

 

말씀을 전해야 할 이유(말세의 징조들)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이 말씀을 전하고 진리를 드러내라고 한 이유는 곧 때가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3-4)” 이때는 사람들이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 섬기기를 거부하는 마지막 때를 말합니다. 딤후 3:1-5을 보면 말세에 나타날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삶을 보면 그 때가 가까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의 머릿속에 주님의 영광보다는 ‘내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 즉 돈에 대한 생각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주님은 참 바쁘실 것 같습니다. 영혼들이 구원받으려면 주님의 역사가 필요한데 주님은 성도들의 다른 기도들―예를 들면 아파트나 땅이 팔리게 해달라는 기도, 사업을 지켜달라는 기도, 시집 장가 보내달라는 기도 등―을 들어주시는 일에 바쁘시지 않을까요. 성경에는 그러한 때가 온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신앙적으로 바로 설 수 있는 방법은 말씀을 강론하고 말씀으로 그들의 삶을 붙잡아 주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진리를 보여줘서 어떤 길로 가야할 지를 제시해주고 잘못된 길을 가면 책망하고 말씀에 순종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해주면 그가 좋아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설교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갔을 때 한 사람이 제게 와서 오늘 설교에서 잘못된 부분을 말해준다면 저의 기분이 어떨까요. 그것이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탕발림, 즉 거짓을 더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모두들 진리를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롬 1:2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계 22:15)”

 

또한 사람들은 바른 진리를 듣는데 귀가 가려져 있습니다(마 13:15). 진리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힌 것입니다. 잘못된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참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사기를 쳐서라도 주님께 돈을 가져다 바쳐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논리입니다. 그들은 감옥에 가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또한 말세에는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둘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증거하는 목자를 찾아가는 것은 성경적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가르침을 찾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직장을 옮길 때 협상하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보장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교회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자신이 몸담을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세에는 진리를 따르기 보다는 사람을 좇고, 진리를 버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보다는 허탄한 이야기에 더 마음이 쏠리는 것입니다.

 

말세를 만난 자의 자세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5)” 주어진 모든 일에 충성스럽게 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구절이 아닙니까. 생각해보면 신앙 안에서 주님과 함께 신실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고난 가운데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선을 행하고 살면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 3:17)” 또한 경건하게 살면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예수님을 따라 살고 진리를 따라 살면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요 15:20, 눅 11:49-51).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핍박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 스데반도 말하기를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 중에 핍박하지 않은 선지자가 어디 있느냐 했습니다(행 7:52). 지금까지 신앙 안에서 경건하게 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움과 핍박 가운데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도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같이 너희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의를 행하고 진리를 순종하며 그리스도를 닮아 갈수록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선지자들과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의 종들이,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고개만 숙이고 무릎만 꿇으면 고난을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하지만 그것은 옳은 기도가 아닙니다. 또한 전도인의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결론

 

사도 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이 진리를 싫어하고 귀를 가리우며 사사로운 욕심에 따라 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진정한 진리를 입증하고 잘못된 자를 책망하고 힘이 없는 자를 격려해서 하나님의 진리에 머물도록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도 진리를 떠나서 거짓을 좇는 사람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착념하고 말씀에 거하고 있으면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은 투쟁과 같이 힘든 일입니다. 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열심히 헤엄쳐야 하듯이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외부적인 핍박을 견뎌내야 합니다. 늘 말씀 가운데 붙어 있어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