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교회

2009년 November 8일 ()

본문: 고린도전서 12:25-31 |

주 제: 몸과 교회

 

본 문: 고린도전서 12장 25-31절

 

설교자: 조 성 훈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성경에서 교회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자기 몸에 대해 100% 만족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키나 외모에 대해서 약간의 불만은 다들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몸과 같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교회의 놀라운 진리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몸과 그 지체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27)” 교회의 여러 지체가 각각 은사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한 몸 된 교회를 이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무리 가깝다하더라도 자신의 몸처럼 가깝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몸은 촌수를 따질 수 없는 가까운 관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한 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한 몸이지만 좁은 의미에서 볼 때 우리 교회에 나오신 분들이 한 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운명을 같이하는 지체이기 때문에 좋아도 싫어도 내 지체입니다. 손이 싫다고 버리고 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버릴 수 없듯이 말입니다.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고전 12:15-16)” 교회에서도 내가 다른 지체를 볼 때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는 내 지체인 것입니다. 우리는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사랑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몸의 모든 지체가 각자 은사대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지체의 고통과 영광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고전 12:26)”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돈을 주우면 두 손 중에 하나가 그 돈을 주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손이 그것에 대해 시기심을 갖거나 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회의 진리가 바로 우리가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다른 지체도 고통을 받습니다. 반대로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우리도 역시 영광을 받습니다. 이것이 몸의 진리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괴로워할 때 사도 바울이 괴로워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지체의 고통이 많은 지체의 고통이 되고 한 지체의 영광이 다른 지체들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 12:15)”

 

지체의 다양성과 작용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25)” 지체들이 각각 자기 역할을 해서 서로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내 고통으로 오는 것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성도간의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체 가운데 사귄다는 것, 주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주님의 인도하신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 2:44-45)” 우리 가운데도 이러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에는 물질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은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 12:10)” 성도들의 비판으로 좌절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사랑해도 모자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서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과 마음을 같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롬 12:16)” 그리스도에 대한 것, 전도와 선교, 섬김과 봉사 등에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며 형제 앞에 거칠 것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롬 14:13)” 하나님의 사랑이 일방적이듯이 우리의 사랑 역시 그래야 합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7)” 여기 ‘서로 받으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정말 받기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서로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부르실 때 있는 그대로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술, 담배를 끊고 말버릇을 고치고 오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받으셨는데 우리가 받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상 앞의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있고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 거부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있는 그대로 받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내가 다른 형제들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종노릇하고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며 위로하고 원망하지 말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며 다른 사람의 짐을 져주라고 했습니다(갈 5:26, 엡 5:19, 살전 4:18, 약 5:9, 벧전 5:5, 갈 6:2).

 

지체 가운데서의 질서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28-30)” 모든 지체가 다 중요하지만 몸 가운데는 질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선지자로, 교사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은사에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셨을 때 그가 나보다 더 높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몸 가운데 특별히 높은 부분이 있습니까. 신분적으로는 다 똑같지 않습니까. 몸의 지체들은 전혀 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은사를 활용해 다른 지체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 때 그리스도의 온전한 모습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것은 “더 큰 은사를 사모하나”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통해서 몸된 교회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