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한 이해

2005년 March 27일 ()

본문: 히브리서 11:1-6 |

본문말씀 : 히브리서 11장 1절-6절
주제 : 믿음에 대한 이해
설교자 : 조성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가장 많이 말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믿음 일 것입니다. 성경에 사도 바울이 말하는 믿음, 소망, 사랑은 우리가 삶 가운데 자주 말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11장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믿음은 무엇이며, 그러한 믿음을 갖은 사람들은 그 믿음이 어떻게 삶에 나타나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기독교 안에서만 사용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살면서 믿음은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자신의 배우자를 믿지 못하는 것을 의처증 혹은 의부증이라고 합니다. 이런 환자들과 살아가기는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도 늘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믿음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면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주여 주여 하지만 주님께선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믿는다고 말했으나 진정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정의 - 바라는 것들의 실상
믿음이란 첫째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막연한 기대는 믿음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라고 물을 때 하나님이 보내주시겠죠 라고 말하는 것은 막연한 기대이고 단순한 소망이지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에는 반응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확신이며, 실체인 것입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한 친구가 저에게 급한 사정으로 기한을 정하고 일억을 빌려 갔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집에 돌아와서 일억을 받을 것에 대해 안심할 수 있으면 친구를 믿는 것이며, 불안해 잠을 못 이룬다면 이것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이며, 확신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 곧 실체인 것입니다. 또한 바라는 것을 이미 갖은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많은 이들이 주님 안에서 안식할 수 있는 것일까요? 바로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하늘나라에 간 것도 아닌데, 천국의 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이상한 점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미리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을 이미 실질적으로 갖은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말하면 확신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보고 기대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서 진정한 믿음은 꼭 그 믿음에 따른 행함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하지만, 오해하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먼저 있고 그에 따른 행함이 있는 것이지,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행함이 있는 곳에는 그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믿지 못한다면 행동 하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이 바로 이런 믿음인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약속에 확신을 갖고 있으며, 그를 통해 마음의 쉼을 누리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자신이 예수님이 오시면 천국에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신다면 그런 분들은 진정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한 정의 -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신념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신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굳은 신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확신에 따라 살아갑니다. 만약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곳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하늘나라에 투자하지 않는 것일까요?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확신하고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저 취미 생활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라면 신앙인 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확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로 전 인생을 투자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남는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것이 정말 가치 있다고 믿습니까? 물론이죠! 그렇다면 그곳에 투자하고 있습니까? 아니요~ 이런 자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모든 삶을 투자했습니다. 그것이 남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볼 때 성경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여기에 행동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인 줄 알고 믿느냐 잘하였도다 사단도 믿고 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실체요, 확신이요, 신념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말은 하면서도 거기에 안식하지 못한다면 그런 자들은 진정으로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 불신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가치관 공부를 했는데 그 공부한 대로 살아가는 삶이 남는 삶이란 것을 믿습니까? 믿는 다면 투자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아들이 아버지께 가서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을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기로 약속했다면 아들은 그것을 믿고 기뻐 뛸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틀림없이 사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부터 기뻐 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실질적인 것입니다. 만약 비가 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면 그 날은 우산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혹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 할 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대로 내가 믿노라 라고 한다면 그것은 큰 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확신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모든 약속을 말하는 것이며,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을 우리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것처럼 즐길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을 거기에 투자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큰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들의 믿음의 삶
성경에 나와있는 많은 사람들 중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만남이 있었기에 하나님께 대한 특별한 믿음이 없어도 살았지만 그 후손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었지만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자고 그들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이 증명해 주는 것은 그들의 확신대로 살아간 삶이 옳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갖고 살았으며 또한 그들의 삶이 헛되지 않았고 바른 삶이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에녹, 아벨, 아브라함, 모세 등의 삶에서 증명되어진 것은 말씀에 확신을 갖고 살아간 그들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증명해 주는 것은 약속을 믿지 않고 말씀을 떠나 자신의 뜻대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이 다 헛된 것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것은 바로 믿음을 따라 살아간 선진들이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 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백질 하나가 우연히 분열되어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 라고 말하기도 하고, 단군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록 그것을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만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어졌으며, 영의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며, 또한 장래의 일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누가 우리에게 죽음 이후의 삶을 말해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무언가 있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못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사자 밥을 놓고, 좋은 묘자리를 쓰며, 제사를 지내지만 죽음 그 이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만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길 죽음 후의 심판 있고 또한 영원한 하늘나라와 불못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으며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신기하고 알 수 없는 사람들은 요즘 교회 나간다고 하면서도 성경의 일부분은 믿고 일부분은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에 대해 여러 가지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지만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고 있으며, 장래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믿음의 한 예로 4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 다 제사를 드렸지만 한 명은 양으로, 한 명은 곡식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아벨은 믿음으로 드렸으며,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드렸다 하는 것은 아벨이 자신이 드린 제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며, 기뻐 받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드렸다는 말하는 것입니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더 값있는 것을 드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받음직한 제물을 드렸다는 것이며, 믿음으로 들렸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접근방법에 대해서 아벨의 방법이 가인보다 더 나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5절에서 말하는 것은 에녹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에녹을 보면 하나님과 동행을 한 첫 사람으로 나옵니다. 동행한다고 하는 것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치 있게 보는 것을 에녹도 가치 있게 보고 하나님께서 가치 없게 여기는 것을 에녹도 가치 없게 여겼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은 후로는 그 전의 믿지 않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고 합니다. 그것은 서로의 가치관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란 힘든 일 입니다.
동행이라 하는 것은 가치관이 거의 같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고 ,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며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확신 없이 있는 일이겠습니까? 하나님 자체에 대한 큰 확신과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일 입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며,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말씀은 일 핵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다 이룰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이 가져야할 것
6절에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고 계십니까? 성도님들은 저희가 믿습니다. 만약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자리에 나올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확신을 갖고 계십니까? 그럼에도 삶의 변화가 없는 것은 왜 일까요? 문제는 그분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거든 바로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반드시 믿어야 하며,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가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거기에 대한 보상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먼저 하나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시간 말씀이 끝난 후 천사들과 함께 천국의 이곳 저곳을 구경한 후 다시 온다면 내일부터 여러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달라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나라를 가 봐야만 하늘나라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보지 못했어도 천국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말씀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을 믿는 자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 불신하는 것도 상대방을 상당히 힘들게 하는 일 입니다. 만일 아빠가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아들이 매시간 마다 와서 정말 사줄 것인지 확인하고 간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요? 내가 얼마나 신용이 없으면 이렇게 믿지 못할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 점 일 핵도 그냥 돌아가는 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바다에게 잔잔하라고 명했을 때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썩어 죽은 자에게 걸어 나오라고 명령하셨을 때 죽은 자가 살아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말씀에 대한 신뢰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고 기자는 말하는 것입니다. 모두들 하늘나라가 좋다고 말은 하지만 당장 하늘나라로 오라고 한다면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런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것이 많이 남는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상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굉장히 인색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말이 여러분의 믿음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이 바로 여러분의 믿음인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는 만큼 여러분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가끔씩 집회 시간에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까? 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여러분의 삶도 그렇게 말해줍니까? 라는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에 증거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그것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정말 믿습니까? 믿는다면 신뢰를 여러분의 삶에 나타내 보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