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본 문 : 롬 9:30 - 10:1-30
설교자 : 조 성 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복된 특권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의 조상 역시 훌륭한 믿음의 선진들이었고, 그 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계명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민족보다 더 복된 민족은 세상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축복 가운데 살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고, 죄악 가운데 살며, 우상에 찌들어 살던 이방인들은 그 의를 얻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본문 말씀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복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또 실제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였습니다. 노아와 다윗, 솔로몬, 아브라함 등의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순종했을 때, 복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통해 의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되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사람이 얼마나 무도한 죄인인가를 위함입니다. 즉, 지키지 못함을 아고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좇아간 신앙의 길
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했습니다. 율법이 정상적으로 작용했다면, 죄는 살아나고 자신은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을 포함한 무수히 많은 율법들을 정확히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혼방을 입을 수 없었고, 음식도 성경에서 말하는 것만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돼지고기도, 비늘이 없는 생선도 먹을 수 없었고, 오직 되새김질 하고, 발이 갈라진 고기만을 먹어야했습니다. 이 뿐이 아니라 그들의 지켜야 할 법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이러한 율법들이 주어질수록 죄가 드러나고 자신은 죽어야 정상인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이러한 율법들이 주어질수록 자신의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는 오늘 본문 말씀을 잘 대변해줍니다.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에,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라고 시작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과 다른가를 말합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더러운 세리와는 다른, 거룩한 사람인 것을 감사한다고 기도합니다. 율법이 임할수록, 자신이 세리보다 못한 죄인임을 고백해야지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그는 자기 자신이 의롭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 사람 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의로운 민족이고, 위대한 민족이라고 여겼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교회에 오래 다닌 많은 사람들이 이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창녀들을 보면, 손가락질 하고, 또, 어떤 사람이 창녀하고 관계를 했다면, 그를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면서 손가락질합니다. 자신은 그러한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큰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와 정 반대되는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복 받기를 원하시지만, 그것으로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구원의 방법도 아닌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생을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보통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정확하게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밥도 하지 않았고, 스위치를 올리거나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을까 연구하여 어느 것은 일이고, 또 어떤 것은 일이 아닌지를 정했습니다. 또한, 음식 먹는 것도 정확히 율법대로 지켰고, 음식 먹기 전에는 항상 손을 씻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철저하게 십일조를 냈습니다. 그들은 정말 율법에 대해 열심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일을 모르고 힘써 자기 의를 내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오직 제물을 통해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면, 자신의 의가 드러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의는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았다고 말하면, 우리의 의를 드러낸다고 생각하여 교만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은혜에 기초한 구원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가 의로워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내 죄를 담당하시고, 주님의 의로 내게 옷 입혀주셨기 때문에,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의는 ‘내 의’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며, 그러기에 교만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좇아간 율법을 통한 의는 그것을 통해 의롭게 되려고 하면 할수록 자기의 의를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의 의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힘써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려고 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모두 지키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방인들이 좇아간 신앙의 길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달리, 이방인들은 율법을 따라 의롭게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들에게는 율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둘째로, 그들은 우상에 찌들어 살았기 때문에 변명할 수 없었습니다. 도덕적으로도 유대인들에 비해 훨씬 더 타락했기 때문에 죄인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결국, 이방인들은 그들의 행함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의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세리의 기도는 이런 이방인의 입장을 잘 나타냅니다. 세리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세리가 의롭다 함을 얻고 내려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의 세리는,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할 당시에 세금을 걷는 사람들이었는데, 유대인들은 세리에 대해,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라고 생각해서 죄인 취급을 했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교해볼 때, 사람들은 십일조도 잘 드리고, 금식도 하며, 안식일을 잘 지키는 바리새인이 더 구원에 가깝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훨씬 더 빨리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잘 참석하고, 십일조도 잘 드리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비록 행실이 좋지 못했지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 훨씬 더 구원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마음속에는 자신이 무언가를 잘 해야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라봐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잘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로 이와 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구원에 이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구원의 방법
사도 바울은 6-8절 말씀에서는 복음은 가까이 있어 원하기만 하면 믿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복음의 말씀이 하늘에 있어 누가 하늘까지 가서 가져와야 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저 아래 음부까지 가서 올려 올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즉,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입에 있고, 마음에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9-10절에서는 구원의 방법을 말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도 바울이 구원의 방법을 말함에 있어 율법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율법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방법은 우리 입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인, 구세주임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입술로만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나의 구세주이며, 내가 평생을 섬겨야 할 나의 주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우리는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습니다. 오직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대가를 지불하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받으면, 또 무언가를 돌려주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선물입니다. 값없이 기쁘게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에 의지하는 것이고 믿음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함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자꾸 무언가를 지불하려고 합니다. 무언가 내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행하는 금식, 십일조 등의 것은 물론 중요하고, 좋은 것이지만,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행하는 것이지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진정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 주님이 정말 나의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돌아가신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평생 섬겨야 할 주인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한 부자가 주님께 찾아와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저는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너의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고 말씀하셨을 때, 그 부자는 심히 고민하여 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 사람은 실상, 계명을 다 지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또 계명을 지켜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신앙의 길을 잘못 든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구원을 위한 신앙의 길을 잘못 들어서고 있습니다. 각종 나무나, 바위에게 빌기도 합니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올바른 대상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선택한 방법을 좇아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만, 예수님을 못 믿겠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십계명을 열심히 지켰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론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좇는다고 말했지만, 항상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가 월등히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또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의 길을 좇지 않고, 행함의 길을 좇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행함을 의지하여 주님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행함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길에서 돌이켜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믿음의 길을 통해, 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길을 가시길 바랍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방황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