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영웅들

2005년 April 10일 ()

본문: 히브리서 11:23-40 |

본문말씀 : 히브리서 11장 23절-40절
주제 : 믿음의 영웅들
설교자 : 조성훈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한 것이며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대한 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에 증거인 것입니다. 오늘은 믿음의 영웅들이라는 주제로 여러분들께 말씀을 전하길 원합니다. 과연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를 삶을 통해서 보여준 사람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입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 말씀에서 그렇게 살아간 몇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영웅들 - 모세의 삶
첫째로 모세의 부모를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모세를 낳았을 때 믿음으로 모세를 키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이 아들을 낳으면 다 죽여야 했습니다. 그것을 어기는 것은 부모까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왕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즉,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을 만큼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는 바로 왕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함을 거절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택했습니다. 이와 같은 행동에는 정말로 믿음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힘들게 노예 생활을 했고. 그 때 모세는 공주의 아들로서 당시의 모든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볼 때 바로 공주의 아들의 전망이 훨씬 밝고 유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노예 생활로 고난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기를 선택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 없이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삶을 보면 그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출애굽에 나타난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도 그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애굽을 나올 때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문설주에 바른 일등 모든 일들이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신뢰하게 만들고, 말씀에 대한 신뢰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 모세와 같은 사람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 때문에 그 삶이 변화를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닷가에 서서 바다 위에 지팡이를 높이 들으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순종했을 때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서 비롯되었으며, 오늘 말씀에 나온 신앙의 영웅들은 그들의 삶에 그만큼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있었으며, 그러했기에 성경에 기록되어져서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읽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영웅들 - 여호수아와 라합의 삶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들의 삶에는 얼마만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나타날 까요? 여호수아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발을 딛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같은 행위는 사람이 보기에는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발을 딛었을 때 강이 말랐습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리고 성은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방법상으로 볼 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무너뜨린다면 오히려 가능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벽을 하루에 한바퀴씩 돌고 마지막에 일곱 바퀴를 돌아 성벽이 무너지게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한 행동을 하기까지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순종은 놀라운 이적을 일으킵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냄새가 났을 때도 예수님께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말씀대로 나사로는 살아서 무덤에서 걸어나왔습니다.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일들이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그러한 기적들을 이루어 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일, 홍해를 건넌 일, 여리고 성이 무너진 일 등 많은 사건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다음은 라합의 이야기입니다. 라합의 결정은 참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매국노가 되는 일이었고, 자기 나라를 팔아 넘기는 일이었지만,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는 자신이 비록 정탐꾼들을 넘겨 준다해도 여리고 성은 결국 멸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하나님 말씀에 신뢰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라합은 정탐꾼들을 숨겼던 것입니다. 무슨 믿음일까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될 것을 알았고, 자신의 나라는 결국 멸망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기드온, 입다, 삼손, 다윗, 사무엘 등 성경에는 수많은 믿음의 영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33절에 보면, '저희들이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오는데 성도들이 나가서 싸우지는 않고 기도만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보다 큰 나라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이며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여 연약한 자와 강한 자 사이에 도울 자가 하나님밖에 없사오니 하나님만을 의지하나이다' 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선 천사들을 통해서 강한 나라의 군사들을 진멸시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하나님께선 사람들이 자신을 신뢰해 줄 것을 늘 목말라 하고 계십니다. 광야에서의 교훈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루는 백부장이 그의 친구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자신의 하인을 고쳐주실 것을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의 종을 고쳐주시기 위해 그의 집에 가시고자 했을 때, 백부장은 오실 필요 없이 말씀만 하소서 라고 말하며 예수님께서 그곳까지 직접 오시는 것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선 '내가 아직 이스라엘에서 그와 같은 믿음을 갖은 자를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신뢰를 원하시지만, 우리는 마치 의처증에 걸린 사람과 같이 주님을 믿지 못합니다.
마지막 말씀을 보면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성취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구약의 많은 예언들이 성취되었고, 성취되어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이것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시대에는 메시아가 오시지도 않았고 ,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린 이미 오신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있고, 그의 생전의 유적지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성경의 기록들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는 아주 심한 의심 병에 걸려 있는 환자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
오늘 말씀을 통해 본 사람들은 다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고, 악형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주님께선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맛을 짜게 하리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믿음(하나님께 대한 신뢰)을 빼면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교회출석이 믿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서 친구가 없다, 대화할 대상이 없다 라고 고민합니다. 물론 친구가 필요하긴 하지만 우리의 신앙의 목표와 대상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께 대한 신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주님께선 우리 삶 가운데서 그의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히11:1절부터 나온 인물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선 그들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시대에 살아가든 자신을 신뢰하는 자에게 자신의 살아있음을 나타내 보이겠다고 약속하셨고, 나타내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선진들의 삶을 보게 되는 것이며. 그들의 삶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이 옳고, 삶이 옳았다는 것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공주의 아들의 칭함을 거절하고 노예 생활을 한 모세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까?, 늙어서 갈 곳을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이 불행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삶이 결코 불행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가요? 복 받은 사람은 말하고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바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33절에서부터 37절까지 보게될 때, 우리의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그들의 어려움과 비교할 때 차마 어려움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과 비하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말씀을 읽으면서 누가 감히 자신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어려움을 감수했던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라 칭함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을 위해 한 나라를 예비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사단 앞에서 욥처럼 나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자가 없다며 욥을 자랑했습니다.. 그때 사단은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것들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하심 아래 욥의 믿음을 시험하였고,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자식과 재물을 잃었으며, 온몸에 종기가 나서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그에게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라, 내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어려움을 당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업이 잘되고, 집안이 잘되고, 건강할 때는 하나님을 자랑하지만 어려움을 만날 때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면 내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 말은 곧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40절 말씀을 보면, 우리는 그들보다 더 좋은 환경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신약시대의 사람이며, 그들은 구약시대의 사람입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섬기며 살았는데, 오늘날 우리는 더 많은 증거와 더 나은 약속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너희에게 전하는 생명의 말씀은 우리가 보았고, 체험했다고 말하고 있으며,사도 바울은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증거 하면서, 주님이 오백의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셨으며 그 중의 태반이 지금까지 살아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이것이 공교히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가 친히 목격한 자들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성도들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알 때 그분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분은 확실한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확신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두고 맹세로 보증하셨습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믿음이란 대상 곧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입니다. 또한 모세와 같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다 우리 안에 주님이 살아계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모세와, 아브라함, 믿음의 선진들이 우리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이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처럼 살았다는 것이며,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을 다른 삶을 살도록 만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라고 말하며 또한 그처럼 살아간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정말 믿는다고 하면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믿고 뛰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있는가 돌아보시고,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