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아픔

2009년 March 8일 ()

본문: 요한복음 18:15-27 |

주 제: 베드로의 아픔

 

본 문: 요한복음 18장 15-27절

 

설교자: 조 성 훈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 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주님을 부인해 본 적이 있습니까. 동창회에 갔는데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못됐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이 두려워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교회에 가본적도 없다고 말하고 나서 집에 돌아왔을 때 우리의 마음은 베드로의 심정과 같을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이 신앙생활에서 최하의 밑바닥까지 내려와 있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항상 즐겁고 늘 승리한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종종 베드로와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주님을 향한 베드로의 마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 마음 속에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순수하고 진지한 마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마음과 같이 살지 못하고 때때로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때 베드로처럼 낙담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베드로처럼 열정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고 했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베드로입니다. 그는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습니다.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막 10:28)”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를 만큼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잘 것 없는 계집 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양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그런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실망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큐티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에 그 마음이 달라져서 한 사람에게도 전도를 하지 못하고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외쳤던 베드로가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했을 때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좌절이 됐을까요(요 11:16).

 

베드로의 연약함

 

주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잠시 후 제자들은 모두 자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너희가 한 시동안도 깨어있지 못하더냐”고 하셨을 때 베드로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막 14:37). 마음은 제자들도 주님을 위해 기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고 주님은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으로 도저히 내려갈 수 없는 지경까지 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3 -14)” 주님은 베드로 역시 주님을 세 번 부인하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마 26:75).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주님을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아시고 그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위로와 회복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저주하면서 부인할 때는 주님께서 심문을 받고 계실 때입니다. 그는 보잘 것 없는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고 나서 이후에 주님을 만날 때까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부활하신 뒤 주님은 당신의 살아나심을 베드로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막 16:5-7)”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위로의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믿음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일을 맡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연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베드로에게 주님은 굉장한 임무를 맡기시고 승천하셨습니다(요 21:15-17).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연약한 사람이지만 주님은 우리에게도 큰일들을 맡기셨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주님과 같은 방법으로 죽을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넘어진 것은 잠시, 순간이었고 그는 결국 승리의 면류관을 얻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험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 7:15)”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롬 7:19)” 자신이 마음으로 원하는 것과 현실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1-24)” 이 말들은 탄식하는 소리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싸울 때 우리가 겪는 고통의 소리인 것입니다.

살아있는 양심은 작은 일에도 괴로움을 겪습니다. 시장에 가서 돈을 더 거슬러 받았다면 그것이 작은 돈이라도 마음이 괴롭습니다. 신앙 안에서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작은 문제라도 괴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틴 루터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의 괴로움은 주님을 섬기고 싶은 만큼 섬기지 못하는 괴로움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가운데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주님은 절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한 때 신앙생활의 최하에 내려가는 어려움에 빠졌지만 거기서 주저앉지 않고 일어서서 승리의 문까지 이른 것을 보게 됩니다. 마가도 한 때는 선교를 나가다가 실패해서 좌절했지만 다시 세움을 입었습니다.

수제자라고 하는 사람이, 모두가 주님을 부인할지라도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마음에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의 연약함을 알듯이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도 사회생활, 가정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마음 속에 좌절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성도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때 괴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것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9)” 누구도 우리의 구원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밤낮으로 기도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일곱 교회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계속해서 “내가 너희를 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발견합니다. 너희의 수고와 고통을 알고 네가 얼마나 연약한가도 알며 적은 믿음을 가지고도 나를 배반치 않은 것을 내가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결론

우리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 약점을 우리 주님께서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사회가 급속도로 세속화되고 있고 성적으로 타락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악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고 사람들의 모임 가운데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기 힘듭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삶과 행동으로 주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 이후에 베드로를 만나셔서 과거에 그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며 승리의 개가를 부른 것처럼, 곧 이 육체를 벗고 변화되어 하늘나라에 들어가면서 다 함께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좌절하더라도 주님을 바라보시고 주님 앞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를 그 날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