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 복음을 거부한 이스라엘
본 문 : 롬 10:14-21
설교자 : 조 성 훈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여러분이 잃어버린 가장 애석한 기회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로또 복권을 사기 위해 번호까지 다 적어놓고, 미처 사지 못했는데, 발표된 것을 보니 자기가 적어 놓은 그 번호였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결혼하기 전에 자신과 결혼하자고 조르는 사람에게 거절했는데, 지금 그 사람이 갑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후회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삶을 살면서 후회할만한 여러 가지 일을 겪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애석한 일은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그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좋은 부모를 만날 수도 있고, 또 한편,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이고, 춤바람이 난 어머니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 어머니처럼 살다가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복음을 듣고 일평생을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만,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원받을 기회가 일평생 주어졌는데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이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할례를 시작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율법을 지키고, 부모로부터 계속해서 양육을 받지만,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복음 전파의 경로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의 경로를 말하면서, 첫째로, 믿지 않은 이를 부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직 진실로 믿는 자들만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의 고백이나 부름은 진실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나에게 주여 주여 하면서, 어찌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주여,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라고 말했을 때,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신 노무현 대통령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분은 저를 모릅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과 저는 아는 사이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안다는 것은 서로가 알아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주님을 진실로 믿는 자들만이 주님을 ‘주’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듣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든지, 그렇지 않든지에 상관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믿고, 믿지 않고는 듣는 사람이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하는 것까지가 우리의 책임이지, 믿는 것까지가 우리의 책임은 아닙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약을 가지고 있을 때, 친구에게 그 병을 낫게 하는 약을 주는 것까지가 우리의 책임이지, 약을 먹고 안 먹고는 그 친구가 결정해야 될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전파의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매일 천둥과 번개를 내리시며, 하늘에 요한복음 3장 16절을 써놓으신다면,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모두 구원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복음 전파의 경로 중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계속해서 선지자를 세우셔서 말씀하셨고, 이방인인 고넬료에게도 베드로를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에도 빌립을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없으면, 복음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넷째, 보내심을 받지 않으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인은 사도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여러분들의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입을 통해, 또 우리의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 마디 없이 그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삶으로 복음을 훼방하기도 합니다.
다섯째,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믿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말미암는 믿음만이 진정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 위에 있어야 합니다. 진리 위에 있어야 그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복음을 들었습니다.(18절) 성경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미쳤다고 말합니다.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라고 말합니다. 사람들 속에 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잘못 되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라고 말합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사람들은 하늘이 무심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부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복음이 충분히 전달되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가 왔는데도, 메시아를 거부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비극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건대, 메시아를 거절한 것만큼 비극적인 결정은 없습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충분히 듣고도 복음을 거부한 것만큼 비극적인 결정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메시아를 거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씀하셨고, 이사야는 이사야 10:16에서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통해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도 “내가 보낸 선지자들 중에 너희가 배척하지 않은 자가 누구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3:34-35)”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모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그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중재로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돌이키셨지만,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또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다는 말은, 귀에 들려도 그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뿐 아니라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선지자들을 모두 다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3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13:45-46)”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버렸을까요?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자기 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종교에 열심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일을 맡아 충성스럽게 하는 사람들의 위험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를 낫다고 생각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복종치 아니하는 것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이방으로 넘어간 구원의 기회
마 14:22-27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방 여인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자신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10:5-6에서도 주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이방 지역으로 가지 말고, 이스라엘에게 가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막 7:27에서는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구원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엡 2:11-12에서 이방인의 상태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롬 10:19-20에서는 이방인의 구원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구원의 기회를 이스라엘에게 주려고 했으나, 그들이 거절하자, 이방인들에게 기회가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의 기회가 이방인에게 넘어간 것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시기 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참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우리는 구하지 않은 백성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구했던 백성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1:19-20에서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결론
하나님은 패역하고, 순종치 아니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일토록 손을 벌리시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롬 10:21) 성경 여러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44:21-22, 렘 3:12, 4:1, 사 49:15) 마치 탕자의 아비처럼,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애타게 기다리셨지만,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 혹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 분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이방인의 때입니다. 지금 기회를 잃어버리면, 영원히 구원받을 기회가 없습니다.주님께서는 자신의 잔치에 초청함을 받았던 사람들은 다시는 초청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 받은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같이 귀한 구원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 받은 사실 하나로 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너그러운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