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부활의 소망
본 문 : 고린도 전서 15장 35절 ~ 49절
설교자 : 조 성 훈
부활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부활의 소망이라는 주제로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부활에 대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죽은 후에도 세계가 있을까? 또 있다면, 그 세계는 어떤 세상인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부활이 있기는 한 건가? 부활이 정말로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다시 살게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 말씀에도 그러한 질문이 나옵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며, 또한 산다고 하면,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러한 질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죽으면 아무 것도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참으로 곤란하게 만듭니다. 없다고 하자니, 내세가 있다는 증거들이 참 많이 있고, 있다고 말하자니, 확실한 증거를 대기는 어렵고...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하루는 사두개인들이 주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어느 집에 칠 형제가 있는데, 큰 형이 자식 없이 아내만 남기고 죽고, 그래서 둘째가 결혼했는데, 또 아내를 남기고 죽고, 그렇게 해서 일곱 형제가 모두 아내를 남기고 죽었는데, 죽은 이후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굉장히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죽음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묘 자리에 신경을 쓰고, 꿈속에서 죽은 사람이 나타났다는 말을 하는 등, 사람들이 하는 말과는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사후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사람들이 입증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또 한편, 죽음 이후에 다른 것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 불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이생에서 한 것에 따라, 즉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악한 일을 많이 하면, 보잘 것 없는 짐승으로 태어난다고 하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생을 하지 않습니다. 미얀마에는 불교인들이 짐승들을 돈주고 사서 방생해주는 일들을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하는 것인데, 그것 또한 부질없는 일들임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으신 분이 계십니까? 아무도 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기다리는 것들이 수고와 슬픔 뿐 아닙니까? 살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또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의 영이 어딘가에 가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꿈에 누가 나왔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영혼이 정처 없이 떠다니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부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다 사실에 근거하는 것들은 아닙니다.
과연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습니까? 여기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이 궁금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없다고 말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있다고 말합니다.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확실히 없다고 말할 수 없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확실히 증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후에 분명히 부활이 있다.” 그것은 성경을 통해 분명히 입증된 사실이고, 현재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러한 내세에 대한 말씀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8,9절에는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계시며, 무덤에 있는 자들이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는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젊은 남녀가 결혼하려 하는데, 양편의 부모들이 심하게 말릴 때, 같이 동반 자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 세상에 가서 이루어보겠다고 같이 자살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참 대단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더 믿음이 좋은 사람들 아닙니까?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분명히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여러 말씀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예는 바로 주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그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죽으면,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진리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그리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여태껏 죽었다가 산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한다고 말씀하셨어도 제자들은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낙심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다신 부활하신다고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유대를 구원할 자로 믿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었고, 이제 우리는 소망이 없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시면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아까 나눈 이야기를 얘기했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말한 것을 더디 믿는 어리석은 자들” 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나사로의 부활을 눈으로 보았음에도,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들에게 말해도 그것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친히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자신이 다시 살았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자신이 부활했다는 것, 제자들도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도 살리시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면, 여러분들도 다시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활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비유
사도 바울은 부활에 대해 의문을 품는 자들에게 씨앗을 보라고 말합니다. 씨앗을 땅에 심으면 싹이 올라옵니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나뭇잎을 먹고살다가 때가 되면, 나무 위로 올라가서 자기 몸을 나무에 매달고 며칠 후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여기, 부활은 육의 몸으로 심고, 영의 몸으로 산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마치 호랑나비 애벌레가 전혀 날 수 없는 몸으로 살아가다가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는 것과 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애벌레로 있을 때는 나뭇잎을 먹다가 나비가 돼서는 꽃에서 나는 꿀을 먹습니다. 먹는 것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여 심는 씨앗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씨앗을 봅니다. 씨앗을 심었을 때, 씨앗과 동일한 것이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37, 38절에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씨앗이 떨어져야 거기서 열매가 나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에 대한 하나의 예입니다. 여러 자연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씨앗마다 각각 다른 모양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육체의 몸을 심었을 때에도, 육체의 몸이 아닌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가는 과정들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람이 죽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스데반은 그의 눈이 열리고 하늘이 보이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6장 1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운 삶을 살았고, 나사로는 부자의 잔치에서 떨어진 음식을 먹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부자는 불꽃 가운데서 눈을 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 사람이 세상을 떠나갈 때 어떤 과정들을 겪게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떠나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살아계실 때 오신다면, 하늘로 올리우지만, 주님이 오시지 않고, 죽게 된다면, 우리도 말씀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가 임종할 때에 천사가 우리를 데리러 와서 주님께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여기 말씀에, 천사들의 손에 받들리어 아브라함 품으로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자 밥을 떠놓는데, 이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영혼을 잘 모셔가라는 의미에서, 중간에 배고프지 말라고 밥을 떠놓는 것입니다. 영혼을 데려간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참 궁금합니다만,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천사들이 영혼을 주님 앞에 데려간다고 하면, 그는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천사들은 그를 지옥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임종을 맞게 될 때에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을 앞두게 되면, 그러한 체험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면, 그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감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주님께서 오시지 않는다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천사가 여러분의 영혼을 데리러 올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몸으로 다시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참 벅찹니다. 우리가 새로운 몸을 입게 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우리가 썩을 것으로 살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썩을 것은 바로 우리 육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 연약함 가운데 있습니다. 썩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우리 육체는 늙고, 또 썩게 됩니다. 이것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현대에, 많은 학자들이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혹은 오래 살 수 있을까를 연구하지만, 사람은 죽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망이 삼킨 바 되기 전에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섞을 것으로 심고, 영원토록 썩지 않을 몸으로 사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한 이후, 우리의 몸은 영광스럽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하고, 우리의 몸 자체도 영화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우리는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몸은 굉장히 약합니다. 매우 작은 바이러스에도 우리는 넘어집니다. 어떤 큰 것으로 인해 죽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로 우리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몸은 굉장히 미약합니다.
호랑나비 애벌레가 유평을 지나 오산까지 갈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기어서 오산까지 가려면, 정말 굉장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오산까지 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은 지금 매우 연약한 상태에 있지만, 머지 않아 강한 몸이 되어 새로운 세계에 적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돌아올 때, 저는 1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탔는데, 그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만약, 빛의 속도, 즉 일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그러한 속도로 간다면, 지구 어느 곳이든 일초 안에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새로 입게 될 몸은 빛의 속도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호랑나비 애벌레가 호랑나비가 되어 먼 거리를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게 갈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새 몸을 입게 되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영의 세계, 주님께서 만드신 그 광활한 세계에 살 수 있게 되는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몸을 가지고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살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은 육의 몸이지만, 앞으로 살게 될 몸은 신령한 몸, 즉 영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영원토록 사는데, 이는 천사들이 영원한 하늘 나라에 맞는 몸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몸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머지 않아 우리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천사들에게 이끌리어 하늘나라에 올라가게 될 것이요, 또한 머지 않아서 우리는 나팔 소리와 더불어 새로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여러분이 새로운 몸, 신령한 몸, 강한 몸을 입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천사들보다 강한, 주님과 같은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식사를 안 하셔도 상관없었고, 벽이 있어도 통과하실 수 있었으며, 하늘 나라에 계신 아버지께 금방 갔다가, 다시 오실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사두개인들과 같이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을 합니다. 화장을 했던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들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땅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은 다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바다에 빠져 죽었던지, 화장을 했던지, 땅에 묻혀 죽었던지에 상관없이 다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우리가 새로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을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44절에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겠고,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로서의 우리의 삶
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겠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하나님의 부활의 약속을 생각할 때에, 또한 썩지 않고, 영광스러우며,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며 살 몸을 입게 될 터인데... 성경은 이 소망을 가진 우리에게 정결케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올해 2004년도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벌써 12월 둘째 주입니다. 머지 않아 우리는 우리의 생을 이 세상에서 마치고 사망이라는 계곡을 건너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팔 소리와 함께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실감이 잘 나지 않지만, 우리가 부활을 실제로 체험하게 될 때,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하늘 나라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할 것이며, 온 우주를 구경하고, 다스리며, 모든 질병에서 자유하고, 슬픔과 눈물이 우리에게서 영원토록 사라지며, 연약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강한 몸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온 우주를 다스리면서, 영원토록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몸으로 다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여러분께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만약, 이 곳에 한 분이라도 죽음 이후에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는, 그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정말 불행한 것입니다. 없다고 하시면, 그 분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 모든 죄를 고백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러한 분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주어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으신 분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부활의 소망이 있다고 하면,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 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영원토록 감사하며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은 생을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