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 대한 권고

2007년 May 20일 ()

본문: 로마서 16:17-27 |

주 제 :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 대한 권고
본 문 : 롬 16:17-27
설교자 : 조 성 훈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람이 모이는 곳에 분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고, 또한 자신의 생각대로 되어지기를 원하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임에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쓴 거의 모든 교회에 이러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로마 교회가 그러했고, 고린도 교회가 그러했으며, 갈라디아 교회 역시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와 빌립보 교회도 마찬가지로 그 가운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분쟁의 원인과 결과
17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로마 교회에 분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분쟁은 왜 일어날까요? 첫째로, 분쟁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할 때 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날 때, 그 시점에서 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 역시 사도들로부터 배운 교훈을 거스르는 자들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습니다.(17절)
둘째로, 분쟁은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데서 시작됩니다. 많은 분쟁이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만큼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하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 때, 불편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것이 문제의 근원인 것입니다. 우리가 수련회나 수양회 등을 갈 때, 같은 방에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청소나 짐 정리 등의 잡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어린 사람이 청소나 짐 정리 등의 일을 하지 않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생각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집에서는 별 말이 없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모인 곳에만 가면 자기 이야기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사람 역시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이며, 자기 자신을 인정해 달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자기를 좇게 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분쟁이 일어납니다. 바울은 사람을 따라 편을 나누는 고린도 교회의 행위를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교회에는 자신을 좇게 만드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 역시 자신을 알아달라는 사람들의 행위에서 비롯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 사람을 좇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분쟁의 원인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며, 교회에서 드러나야 할 분 역시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넷째로, 분쟁의 원인은 교만입니다. 성경은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딤전 6:4-5)
다섯째로, 분쟁은 영적인 미성숙, 즉 육신에 속한 삶 때문에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책망하면서 그 원인이 육신에 속한 자들 때문임을 말했습니다.(고전 3:3)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녔어도 자신이 분쟁을 일으키는 자라면, 그는 육에 속한 자이며, 성숙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절대로 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사소한 것들로 싸우는 것은 어린 아이들의 특징입니다. 마찬가지로 분쟁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분쟁은 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했을 때는 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했을 때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 15:1-3에서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선을 이루며 덕을 세울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분쟁을 야기하지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쟁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까요? 첫째로, 교회가 큰 상처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12:25에서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업이 무너지게 됩니다.(롬 14:19-20) 내가 일으키는 작은 분쟁이 하나님의 사업을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도들이 근심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분쟁의 결과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 대해 말하기를, 그들을 멀리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게서 떠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사유 때문이든지, 성도들을 이간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성도들을 화목하게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도들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주일학교, 중고등부, 등의 많은 교회에서의 일들은 잘 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한 사람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도들의 하나됨을 방해하는 자가 결코 성숙된 자일 수는 없습니다.

 

바울과 함께 있는 자들로 부터의 인사
사도 바울은 먼저, 19절에서 로마 교회의 간증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는 로마 교회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린다고 말합니다. 성도 개개인이 간증을 가지고 있듯이, 교회 또한 교회 나름대로의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주님을 열심히 섬기는 교회라는 간증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교회들은 세속적이라는 간증을 갖기도 합니다. 로마 교회는 그들의 순종함으로 인해 좋은 간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간증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귀한 간증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 바울이 첫 번째로 언급하는 사람은 디모데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 대해서 자신의 동역자라고 말하면서, 그가 사도 바울을 대할 때, 아버지에게 하는 것처럼 대했다고 말합니다(빌 2:21-22.) 물론, 오늘날 자식들이 아버지를 대하듯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살던 당시의 자식들이 극진한 효행심으로 아버지를 대한 것처럼 그렇게 사도 바울에게 대했습니다. 그가 사도 바울을 돕고 섬겼던 이유는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 개개인을 섬기고, 그를 영화롭게 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을 섬김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데 힘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삶을 산 디모데를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부릅니다.(고전 4:17) 이러한 동역은 정말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21절에 나오는 누기오는 행 13:1을 볼 때, 안디옥 교회의 장로 일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또한 야손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사람으로, 사도 바울과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행 17:5-9을 보면, 그가 고난을 당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2절에 편지를 대서했다고 말하는 더디오는 사도 바울의 개인 비서 역할을 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바울이 쓴 서신서 중에는 바울이 친필로 쓴 것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대서한 편지도 있는데, 로마서를 포함한 몇몇 서신서가 그러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동역의 일이 참으로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디오가 했던 편지를 대신 쓰는 일은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의 수고로 인해서 로마서를 오늘날까지 읽으며 큰 교훈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일입니까. 주님께서는 냉수 한 그릇도 결코 그 상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의 우리의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잃은 것은 잃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위해 집과 가정을 버린 자는 몇 배나 더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29)
23절에는 가이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사도 바울이 그의 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가이오의 집에서 교회가 모이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이오의 집에 거하면서 그의 도움을 힘입어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또한 사도 바울은 그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고전1:14)
24절에 나오는 에라스도는 고린도 성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던 높은 관료였습니다. 그 역시 사도 바울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바울의 선교 사명의 근원
사도 바울은 25절부터의 말씀에서 자신의 사명과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다는 내용을 가진 복된 소식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와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은혜가 들어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복음은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였던 사람이 복음을 듣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복음의 능력을 새삼 깨닫습니다. 복음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항상 그의 부르심의 이유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고, 그래서 더더욱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전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병이라도 다 치료할 수 있는 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 물을 병원에 있는 환자들에게 먹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복음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복음에는 어떤 사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지 않아도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복음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 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토록 복음 전파에 힘썼던 이유는 복음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로마 성도들을 위한 축복 기도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27절) 사도 바울이 쓴 모든 서신서를 살펴보면, 그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과 방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삶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주님의 삶 또한 그 목적과 방향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목적과 방향은 어디에 맞춰야 할까요? 우리의 삶 또한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어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 마지막 인사말을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에서 성도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더욱 그 분쟁을 통해 성도들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사도 바울과 함께 안부를 전하는 이 쟁쟁한 신앙인들을 보면서, 우리 또한 그들처럼 주님의 일에 힘쓰고, 동역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복음에 대한 사역의 임무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드린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을 복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얼마나 큰 것입니까? 그러기에 더더욱 우리의 낢은 삶을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수고한 사도 바울의 수고나, 여기 나오는 많은 신앙인들의 수고, 또한 오늘날 우리의 모든 수고는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낢은 삶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