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의 하나님

2009년 November 22일 ()

본문: 마태복음 22:23-33 |

주 제: 산자의 하나님
본 문: 마태복음 22장 23-33절
설교자: 조 성 훈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당시 유대 종교의 핵심적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계획으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문제에 대해서 물었고 주님의 대답으로 그들의 계획은 실패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두개인들은 더 어려운 질문, 즉 부활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사두개인들의 궁금증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전에서 돈을 바꾸는 일, 재물을 파는 일 등을 주관해서 굉장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당시 큰 힘과 권력을 발휘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들의 단점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교리를 우선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문제는 부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람들에게 부활이 얼마나 허무맹랑하나 하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일곱 형제가 있는데 그 중 맏이가 장가들어 후사 없이 죽었다면, 그래서 그 아내가 나머지 동생들과 결혼을 했다면, 부활 시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문화도 한국 문화와 비슷해서 자식을 낳지 못하면 재취를 두고 또는 입양을 합니다. 사두개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물어본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 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29-30)” 사두개인들은 누구보다 성경을 가까이 하고 있었고 성경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 땅에서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하늘나라에서의 삶을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늘나라의 화장실은 금으로 되어 있다는 말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일곱 명의 사람들이 한 여자와 결혼했다고 하면 하늘나라에서는 누구의 아내가 될까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사람이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으며 야곱의 하나님이었다”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사두개인들에게 성경을 잘 몰랐다는 것을 책망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오해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면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되어서 새로운 몸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결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산자의 하나님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31-32)”

 

그리스도인들의 복된 소망인 부활

 

잠자리 애벌레는 물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애벌레가 잠자리가 되어 날아가더라도 우리는 그 애벌레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제한된 공간에 살기 때문에 영혼이 떠나면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물론이고 오늘날의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된 것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2-44)” 이 육신의 몸은 썩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예쁘게 화장을 한다 해도 겉을 꾸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속에서부터 늙어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할 몸은 썩지 않을 몸입니다. 천사들보다 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몸을 가지고 우주를 다스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새로운 세계에 맞는 새로운 몸, 강하고 능력 있는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잠자리 애벌레에게는 물 밖에서의 삶을 아무리 설명해 줘도 감을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흙에 속한 몸이 아닌 하늘에 속한 몸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를 하든지 못하든지 이런 복된 소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현재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영적인 괴로움 가운데서 짐 진 것같이 탄식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부활의 소망, 영광스럽고 능력 있는 몸으로 살아갈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떡과 생선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늘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을 사두개인은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이 부활의 소망이 있다면 자다가 일어나서 춤을 춰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부활의 소망이 없는 분은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질문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을 올무에 잡아매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오해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소망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신을 깨끗케 한다고 했습니다. 복된 소망 가운데 주님을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