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 생수의 강
본 문 : 요7:31-39
설교자 : 조 성 훈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 지라도 그 행하실 표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여러분은 만일 한번 마실 때마다 십년씩 젊어지는 생수가 있다면 그 물을 몇 번 마시고 싶으십니까? 아마 사람들은 그 물을 여러 번 마셔서 모두들 아기가 되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변화와 바리새인들의 시기
예수님의 표적으로 인해서 유대인들 중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고 그 마음이 주님에게 향하기 시작할 때, 바리새인들은 시기심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으러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생수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생수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경고
33절부터 보면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더 있다가”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셔서 아버지께로 가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는 말씀은 매우 무섭고도 비극적인 말씀입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라는 말씀도, “빛이 있을 동안에(요12:35-36)”라는 말씀도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이 말씀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사람이 어두움에 붙잡히게 되면 갈 곳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하신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두뇌가 뛰어나 인공위성을 화성에 보내고 달나라에 보낸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머리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단정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어렵고 또한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생명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계실 그 때는, 사람들에게 일생에 단 한번 밖에 오지 않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때에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잡으러 사람들을 보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에 “없이하소서 없이하소서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고 소리쳤습니다(요 19:15, 눅 23:1). 오늘날의 사람들도 예수는 서양종교고 우리는 그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왜 주님을 다시 찾게 될까요. 지금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어느날엔가 그들이 예수님을 찾을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할 때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도자를 물건 팔러 온 사람처럼 취급할 때, 전도지 한 장 받는 것을 크게 인심 써 주는 것처럼 행동할 때 우리는 마음이 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보면 믿지 않는 자들이 훗날 “저 바위야 내 위에 무너져라 그래서 저 앞에 계신 분에게서 나를 가려다오”라고 소리치게 될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심판대 앞에서 예수님이 자기 앞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을 때 외로움 가운데서 홀로 사망을 맞게 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것은 죽음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누군가와 함께 갈 수 있다면 여러분의 배우자가 함께 해 줄까요? 홀로 죽음 앞에 서서 무서운 심판대를 향하여 혼자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날에 예수님을 찾는 이유는 예수님께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기 위해서, 마지막이라도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사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고 찾다가 결국 만나지 못하고 죄 가운데서 죽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죄를 사하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 치고 있습니까.
주님은 “나 있는 곳에 너희가 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지금은 오지 못하나 후에는 오리라” 말씀하셨습니다(요 13:36). 이 두 말씀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한 무리에게는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나 있는 곳에 오지 못하리라”고 하셨고 또 한 무리에게는 “지금은 오지 못하나 후에는 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초청과 약속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을 듣고 누군가는 “나는 목마르지 않습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혼의 갈증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을이 와서 쌀쌀한 찬바람이 피부에 스치고 낙엽이 떨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돕니다. 우리 속의 영혼이 갈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그분 안에 거하면 우리 안에서는 생수의 강이 흘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시고 성령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기쁨이 그 안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육체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몸을 입게 되는 하늘나라에서는 완전한 기쁨과 평안을 가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영광 가운데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소망이 있습니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것은 나를 믿으라는 말로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요 6:53-57).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약속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주님이 주신 평안과 기쁨이 우리 안에 넘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지금은 우리가 연약한 육체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것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몸을 입게 될 때 새로운 세계에서 영광 가운데서 살 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저주와 정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며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함받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며 모든 축복된 삶의 시작을 말합니다. 우리는 한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신 자들입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 영원한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결론
지금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갈증과 수고 가운데서 고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늘의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주님은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목마른 자들 가운데 있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생수를 마신 자들이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려놓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밝은 소망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을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에게는 다시 주님을 만나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이 있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을 잊지 말고 그 소망으로 참 즐거움 가운데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