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히브리서 12장 1절~3절
주제 : 신앙의 경주
설교자 : 조성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 신앙의 경주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신앙 생활을 군인생활, 씨름, 농사, 결혼 생활 등 여러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말씀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달리기 경주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선진들이 보여준 믿음의 삶
1절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 앞에 있는 허다한 증인들"은 11장에서 배운 믿음의 선진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르쳐준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남는 삶이며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그들의 삶을 보게 되며, 또한 그들의 삶을 통해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솔로몬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기쁘게 할까 많은 시간을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좋은 음식들을 먹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도 하고, 수많은 처와 첩을 두었고, 많은 지식을 쌓으며 여러 가지 즐거움들을 좇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 그의 고백은 그가 좇았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과 여호와를 섬기고 그를 경외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 증거 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읽고 살아가는 우리는 그 증인들의 증거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노아의 경우 역시 힘든 일이었지만 오랜 시간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 말씀대로 되어 노아의 식구가 구원을 받고, 이 세상에 인류를 다시 퍼뜨린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 역시 이러한 것들을 삶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말하고 있으며, 주님을 섬기는 일에 더욱 힘쓸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도 수많은 선진과 증인들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보았고, 만져보았다고 말하고 있으며, 베드로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공교히 만든 것이 아니라 친히 목격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수많은 선진들이 자신들이 체험한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들을 근거로 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신앙의 경주를 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인생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인생의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결산하고 보면 정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증인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을 헛살게 될 것입니다.
방해물을 벗어버리라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벗어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삶을 경주자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그는 "나의 달려갈 길"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달려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 말하기를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라고 말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 역시 그 인생을 마감하면서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모든 신앙인들은 경주자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주는 세상의 경주와는 달리 상 얻는 자가 한 명이 아니며, 경주자 각자의 달려가야 할 코스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상도 각각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할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각자가 달려가야 할 길이 있으며 그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본업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부수적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달려가야 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경주는 몇 십 킬로만 달리면 끝나는 경주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달려야하는 경주입니다. 세례 요한을 세상 적으로 보면, 젊은 나이에 목이 잘려 죽음을 당했기에 불행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는 충실하게 자신의 길은 걸어간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선 여자가 난 자 중에 요한 보다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여러분과 제가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잘 달리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주에는 방해꾼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계속 달려야 하는데 우리를 붙드는 것과 무겁게 얽어매는 것들이 많습니다. 될 수 있으면 달리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고대에 마라톤 선수들은 경주를 위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방해가 되어지는 것들을 다 잘라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성공을 하려면 오로지 그 일에만 몰두해야 합니다. 그것에 빠지지 않고 미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모든 운동선수들이 그의 운동 경기와 관계없는 것은 다 절단합니다. 먹을 것 따먹고 만날 것 다 만나고서는 결코 성공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내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앞에 놓인 코스를 경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골인 점에 도달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많습니다. 시작은 했지만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처음에 믿음 생활을 시작했지만 노년까지 그 믿음을 지켜나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를 얽어매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노름에, 술 마시는 일에 ,텔레비전 보는 일에 일생을 낭비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만한 대가가 지불되어져야 합니다. 무거운 것을 다 벗어버리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세, 다윗, 아브라함 등 신앙의 위대한 선진들을 보면 무거운 것은 모두 벗어버렸습니다. 또한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죄에 빠지면 그것이 우리의 삶과 양심을 얽어매어 일평생을 힘을 펼 수 없게 합니다. 그런 죄를 벗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달려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도 일정기간을 정해두고 평가되어진다면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은 일생을 두가 달려야할 경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한 것이며, 서로 짐이 되어선 안되며, 서로 간에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기에는 인내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위의 것을 바라보라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즉 믿음의 경주는 주님께서 먼저 시작한 것이며 또 주님으로 인해서 우리도 이 경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온전케 하실 이도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누구도 이 경주를 계속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친히 이 신앙의 경기를 경주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 어디서 태어나실 것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마칠 것인가 까지 경주의 코스가 다 정해져 있었습니다. 무덤에 묻히실 것, 다시 부활하실 것 주님의 경주는 계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과정을 신실하게 걸어가셨습니다. 주님은 그 신앙의 노선대로 정확하게 그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경주가 절대로 쉬운 삶은 아니었습니다. 마구간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태어나서, 모든 채찍질과 모독을 당하며 죽으셨던 그 길을 가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길을 앞에 있을 즐거움을 바라보았기에 십자가를 참으셨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의 원동력은 바로, 십자가 너머의 즐거움을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할 신앙의 자세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 앞에서 심히 고민하고 슬퍼했으며 땀을 핏방울과 같이 흘리며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 너머의 즐거움을 바라보며 마침내 그 고통을 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소망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없이는 절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어야하며, 그 다음에는 저 너머에 있는 우리가 앞으로 받게 될 그 소망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가끔 우주에 대한 사진을 보면서 앞으로 주님과 함께 누리게될 영광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게 됩니다. 그럴 때 힘이 납니다. 주님은 십자가 너머의 즐거움을 보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얻게될 수많은 영혼들이었으며, 그 영혼들을 건질 수 있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이 여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일할 때 그 과정은 괴롭습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영광은 참 즐겁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너머의 즐거움을 보셨기에 참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이전에 계셨지만 십자가 이후의 것들로 인해 즐거워하고 이전의 고통들을 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즉, 지금은 내게 없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저 멀리 있는 것들을 마치 받은 것처럼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 때에 될 것을 보고 기뻐했다 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현재에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아직 하늘나라에 가지 않았지만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현재 내 소유로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즐거움이 없다면 신앙 생활은 어려운 것이며, 굉장한 의무감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소망으로 우리가 미리 바라본다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특권이며 즐거움입니다.
위대한 신앙인들은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때 무릎 끓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으로 먼저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이 다른 점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성을 바라보고 장막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성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장막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어려움이 와도 참을 수 있는 것은 저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들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위에 것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의 비결입니다. 마라톤 선수는 달리면서 끈임 없이 골인 점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등에게는 수많은 환호와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까지는 많은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에는 인내심과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주할 때 달리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잘라버릴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죄를 벗어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로지 우리의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는 다 경주자입니다. 어디로 달려가는 줄 아십니까? 어떤 성도들은 이 땅에 있는 목적도, 달려야 할 방향도 잘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왜 달려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달리면서 넘어지지 않을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목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넘어져도 다시 자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나갑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는 신앙의 경주자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처럼 둘러싼 허다한 무리가 증거하고 있으니 히브리서 기자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믿음의 선진들이 삶이 진정으로 가치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믿음의 사람에 대한 일생과 아간과 사울처럼 타락한 사람의 일생에 대해서 기록했을까요?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사람의 삶이 옳았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도 그러한 교훈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헛되이 공부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증인들의 말에 귀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의 믿음의 시발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의 경주를 잘 달릴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만 모든 것은 주님께 달려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한 사실은 우리가 달리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와서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리들은 모두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코스를 계속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그 코스를 잘 가고 있는가 자신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달리는데 무거운 것들을 가지고 달리지는 않습니까? 신앙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절단 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또한 죄 가운데 얽어 매이게 되면 계속 달려나갈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를 달리지 못하도록 무겁게 우리를 얽어매는 것들이 많습니다. 어떤 죄가 여러분들을 얽어매는지 살피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은 여러분들을 달리지 못하게 하는 사단의 계략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여러분 끝까지 경주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눈으로 결승점에 도착했을 때 받게 될 영광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십자가 너머의 즐거움을 바라봄으로, 아브라함은 너머에 있는 하늘에 있는 도성을 바라봄으로, 모세는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사도 바울은 하늘의 기업을 바라봄으로,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늘을 바라봄으로 여러분 앞에 놓인 모든 경주를 끝까지 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