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2006년 July 16일 ()

본문: 시편 103편 |

주 제 : 아버지의 마음

 

본 문 : 시편 103편

 

설교자 : 조 성 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편 103편은 다윗이 쓴 시편인데, 본문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흔히 부모님들은 아들, 딸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너도 결혼해서 너 같은 아들, 딸을 낳아서 키우다 보면, 내(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난할지라도, 그 아버지는 쉽게 아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지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들은 항상 자신의 아들 편에서 생각하고, 아들을 위합니다. 성경에서는, 자식이 떡을 달라고 했을 때, 돌을 준다거나, 생선을 달라고 했을 때 뱀을 줄 부모가 있겠냐고 말합니다. 부모는 그 아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해주신 일에 대한 감사

 

야곱은 그가 인생을 마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날 때로부터 나를 지금까지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 본문 말씀에서 다윗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볼 때, 아마도 본문 말씀은 다윗이 나이가 들어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리라 생각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느끼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다윗 역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7절까지의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해주신 것들을 노래합니다.

 

첫째로, 자신의 죄악을 사해주신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해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 지은것 하나하나에 대해 벌하셨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죄에 대한 요구는 사망입니다. 모든 죄는 형벌에 대해 형벌을 내리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자비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않으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병은 육체의 병일 수도 있고, 영적인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들이 병들면, 자녀들보다 먼저 나서, 자녀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는 분이 바로 부모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병이 들었을 때, 이에 대해 누구보다도 마음을 많이 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파멸에서 건지셨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하나는, 영원토록 멸망할 수밖에 없는 지옥에서 우리를 건지신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사는 동안에 우리 인생을 헛살지 않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이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넷째, 좋은 것들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케 해주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것으로 우리에게 복 주심을 말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가 있는 것들 중에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의 건강, 제물, 가정, 자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감사

 

8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를 알았을까요?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이 풍부하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인구 조사를 인해 하나님께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다윗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시는 분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인생을 살아가면서 체험적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신앙적으로 어렸을 때는, 불공평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별 다른 벌을 내리시지 않는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이를 들면 들수록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해 감사하게 됩니다. 나이를 들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완전하지 못함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주님 앞에 데리고 왔을 때, 주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먼저 자리를 뜬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성경은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그의 인생을 통해 자신이 완벽치 못한 자이며,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사모하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비가 없으시고, 공의만 가지고 계셨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마다 진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해주시는 것입니다.

 

10절에서는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셨다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

 

13절에서는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다른 마음과 다릅니다. 다윗 또한 여러 아들은 둔 아버지였습니다. 그의 아들 중에 하나인 압살롬은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하고, 결국은 그의 아버지 다윗을 왕위에서 쫓아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는 다윗이 데리고 있던 후궁들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겁탈을 했습니다. 그런 아들과 자신의 군대들이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 다윗은 그의 부하들에게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죽었을 때, 그는 통곡하며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또 다윗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체질을 아신다고 말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연약한 점에 대하여 매우 잘 압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무엇에 약한지 잘 압니다. 부모님들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요, 우리의 체질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고민하시며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돌아왔을 때,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연약한 면을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했을 때도, 주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을 배신한 그를 주님은 따듯한 숯불에 떡과 생선을 구워놓고 맞이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면을 잘 알고 계십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우리아를 취했을 때, 그는 죽어야 마땅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우리의 연약한 면을 아비가 그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과 같이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연약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장래를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가 대대에 미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짧고 바람이 불면, 없어지는 들의 꽃과 같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는 끝이 없고, 하나님의 사랑 또한 우리에게 영원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는 것에 대해 참으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창세 이후로 하나님을 가까이서 모셨던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구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기르시는, 우리 영혼의 목자가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우리의 목자로 만난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의 그 많은 위험 가운데 목자도 없이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공급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잘 이해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만 은혜를 베푸시고, 다윗만 그렇게 불쌍히 여기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와 자비를 베푸십니다. 야곱이 그의 마지막 날에 “나를 기르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면, 우리도 그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이 땅에서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을 받고, 그 뿐 아니라,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삶도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고백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비가 없으신 분이라고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의 필요를 모르시는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들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에 정말로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다윗이 말하는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십니까? 다윗이 말하는 그 아버지가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십니까? 그분이 정말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신다면,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여러분께 해주신 일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행복을 오래토록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