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에서 빛으로

2009년 August 16일 ()

본문: 사도행전 26:13-23 |

주 제: 어두움에서 빛으로

 

본 문: 사도행전 26장 13절-23절

 

설교자: 조 성 훈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세상에 여러 가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시각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가장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평생 소원이 단 한 번만 앞을 보고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간절히 보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영적인 소경입니다.

 

바울의 고생

 

세상은 영적인 소경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영적인 소경들입니다. 소경이 아니라면 어떻게 바위에 대고 절을 하고 나무에게 소원을 빌며 원숭이에게 절을 하겠습니까. 얼마 전 인터넷 뉴스를 보니 주인으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은 짐승들이 있는데 가장 많은 상속액이 4천억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기르던 개에게 4천억을 상속해 주는 사람이 눈 뜬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오기 않으면 어둠 가운데 있는 자이고 눈을 감은 장님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기 전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 잡아 죽이고 옥에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13-14)” 사울에게 예수는 한 때 세상에 살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일 뿐이고, 다만 지금 그 추종자들이 세상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그들을 잡아 가둬서 소동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일을 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기를 핍박하고 자기를 부인하며 자신을 믿는 사람을 옥에 가두고 핍박한 사람을 자신의 일꾼으로 삼으시는 하나님, 이것은 정말 은혜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사울을 비롯한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을 일꾼으로 세우신 예수님

 

“주여 뉘시니이까”라는 사울의 질문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핍박을 자신이 당하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15-16)”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사울을 사환과 증인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환은 종이고 증인은 보고 들은 것은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사명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17-18)” 이것은 사도 바울이 받은 사명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사람이었고 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기업을 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영적으로 장님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각 장애인들에게 비하면 우리는 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평생 감사해야 합니다. 그 감사함은 하루만 눈을 감고 생활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길어야 70-80년입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영적으로 눈감은 소경들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소경으로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눈 뜬 사람과 눈 감은 사람은 다릅니다. 장님과 그렇지 않는 사람은 걸음걸이에서부터 다르듯이 영적인 눈 뜬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드러나는 행실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서 “어둠에서 빛으로” 나가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은 지금 흑암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색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기르는 강아지의 옷 한 벌을 70만원에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눈 뜬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평생을 흑암가운데 사는 것은 괜찮지만 영원토록 그와 같은 흑암 가운데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 그들을 이끌어 내는 일을 맡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마 4:16)” 우리도 흑암 가운데 살았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눈을 뜨고 보니 과거의 삶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사람들을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근 137일 동안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석방된 유성진씨는 풀려날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아직까지 북한에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들의 삶은 얼마나 비참할까요.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 것은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단의 권세에서는 아무도 나올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게 되고 사단의 권세에서 예수님께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1:9-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요12:35)” 이 세상의 임금은 사단이므로 모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 운명을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는 피조물은 없습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이고 그는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으로 세상 사람들을 속입니다. 그들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돈과 명예를 얻으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거짓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학력과 지식은 높아지지만 세상은 점점 더 죄악 가운데서 헤매고 있고 급속도로 타락되고 있습니다. 전에 사탄교를 믿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정말 그들이 믿는 사탄처럼 하고 다닙니다. 사람을 제물로 드리고 간음하며 도적질하는 등 사탄이 좋아하는 일들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의롭고 거룩한 분이시지 않습니까.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은 죄악 가운데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우리 역시 그 가운데서 살다가 해방을 받아 사랑의 하나님, 선한 목자, 자비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일한 것 없이 허물을 용서받은 것, 주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것 하나만 가지고도 평생을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계 각국,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수많은 고행들은 자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발버둥이 아닙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들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상속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12)”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4)”,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25:34)”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눈 감은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을 빛 가운데로 이끌어내며 사단의 권세 아래 갇혀있던 자들을 해방시켜 하늘에 속한 기업을 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의 순종과 핍박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19)” 주님이 주신 사명에 사도 바울은 순종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이와 같은 일을 하겠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도 바울처럼 순종하겠습니까. 그는 주님을 만난 그 순간부터 예수님을 주시라고 전파하고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게 하며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되게 하고 하늘의 기업을 얻게 하는데 그의 일생을 바쳤습니다.

 

결론

 

우리는 흑암 가운데서와 사단의 지배 아래서 영원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 불행 가운데 있었지만 빛 가운데로 인도되었고 영원한 영광 중에 하늘의 기업을 이을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야겠습니까. 다시 흑암 가운데로 돌아가겠습니까. 눈을 떴지만 지팡이 짚고 다닐까요. 주님은 우리를 빛 가운데서 하늘의 복된 소망 가운데서 살게 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 지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