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뻐하라

2009년 October 4일 ()

본문: 시편 37:1-8 |

주 제: 여호와를 기뻐하라

 

본 문: 시편 37편 1-8절

 

설교자: 조 성 훈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죄악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날로 악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쁨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보면 당시 사람들의 삶도 오늘날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시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었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라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1)” 때로 운전 중에 담배꽁초를 밖에 버리는 사람들이 있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해수욕장에 가면 바닷가에 쓰레기가 잔뜩 버려져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그러한 악한 행위들을 볼 때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기자인 다윗이 살았을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죄악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로 인해 마음 속에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로 인해서 불평하지 말고 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불평하지 말라는 것은 애타하지 말라, 안달하지 말라는 의미이고 투기하지 말라는 것은 시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이 부자가 되고 더 편하게 살더라도 시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사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롭게 살려고 하는 나는 고난 투성이인데, 악을 행하는 사람은 돈도 잘 벌고 자식들도 잘 되고 무슨 일이든 잘 되는 것을 볼 때 과연 나의 의로운 행위가 무슨 유익이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더 이용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차를 가지고 시내에 나가면 교통신호를 지키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 때 만일 여러분이 신호를 지키고 서 있으면 그냥 지나가는 차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이 마치 나를 바보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 차들을 바라보고 가다가 펑크나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그는 안전하게 더 먼저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불평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뇌물을 줘야 일이 되고 거짓말을 해야 통하는 세상에서 의를 지키며 살아갈 때 성경은 우리에게 불평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2)”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있는 악인들이 누리는 영화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뿐입니다. 하루살이가 와서 자신이 대통령을 했다거나 갑부로 살았다고 자랑한다면 우리는 그저 웃고 말 것입니다. 그래봤자 하루뿐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도 악인들이 잘 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이아몬드를 한 짐 지고 가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 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 폭발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라면 부러워하시겠습니까. 길가에 나있는 풀들이 나름대로 꿈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지나며 그 풀을 끊어 버릴 때 그 순간 풀의 모든 꿈은 끝이 납니다. 아무리 풀에게 돈이 많고 권력이 많다고 해도 낫을 들어 풀을 베는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악인의 결과가 그러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고 그를 의뢰하라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3-4)” 모든 인간관계의 갈등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오해의 소지가 참 많습니다. 어느 날 제가 오랜만에 고향친구를 만나 그의 손에 이끌려 술집에 갔다면, 그 곳에서 그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술집에서 나왔는데 그 모습을 교회 성도 중에 한 분이 봤다면 어떨까요. 어떤 사람이 아내가 다른 남자와 손을 잡고 가는 것을 봤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아내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면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시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업이 갑자기 망할 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립니다. 욥처럼 하루 아침에 재산이 다 없어지고 자식, 손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다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흔들림이 없을까요.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니”라는 욥의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깨지지 않은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실 정도로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수십 년 동안 주님과 동행하면서 우리가 주님에 대해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신실하신 분이고 신사라는 사실 아닙니까. 나에게 어려움이 생긴다고 신사였던 분의 인격이 하루 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악한 자가 편안히 사는 것을 보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가운데서 성실하게 일하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3-4)”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땅에 거하여’라는 말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머무르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우리의 양식으로 삼고 그것에 만족하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3-24)”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그의 길을 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세상은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풀이 베임을 당하는 것같이 곧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 안에는 참된 기쁨과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다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심이 사람에게 향하게 될 때 우리는 실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그를 신뢰하라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5-6)” 이 말씀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까지 모두 맡겨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내 앞길에 대하여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물론 돈벼락은 맞게 해달라는 소원 같은 것은 들어주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육체적 욕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뤄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달라는 대로 주시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제 아들이 어릴 때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면 저는 아마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지만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기도를 했는데 기도 응답이 없다면 그 기도가 합당치 않았던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짐을 지고 예수님께 나와서 그 짐을 내려놓지 않고 계속 지고 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께 나온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내 앞길을 맡기기 위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자신을 주님께 맡기고 내 삶을 주관해주시기를 바라며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주님의 길과 내 길이 다르다면 문제가 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한 것은 ‘길’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대한 길은 평탄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길은 어떠합니까. 우리 역시 태평하고 고통 없는 길을 원합니다. 우리의 길이 순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의롭게 사는 자들에게 그의 의를 빛같이 나타내실 것이고 그의 공의를 모든 사람 앞에 분명히 드러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잠잠히 참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7-8)” 악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잠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몇 천 년을 기다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의 삶을 하나님 손에 맡겼다면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잠잠히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결론

 

세상은 우리를 화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행악자로 인하여 불평하지 말고 안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참고 기다리며 우리의 길을 여호와 앞에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를 신뢰하고 그의 성실하심으로 식물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짐과 불평,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가 이루시고 의와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