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
본문: 베드로 전서 2장 11-17절
설교자: 조성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오늘은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에나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느헤미야서 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면서 한 손에는 창과 방패를 한 손에는 진흙을 가지고 성벽을 쌓으면서 창과 방패를 놓지 못했던 그들을 보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의 싸움도 그때와 같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는 흔히 쉽지 않은 신앙생활을 생각할 때 사도 바울만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베드로 역시 신앙 생활이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기 힘든 이유는 첫째로, 우리는 세상을 대하여 싸워야 하며, 둘째는 자신의 정욕과의 싸워야하며, 셋째는 우리가 세상에서 하기 힘든 임무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싸우는 그리스도인
11절을 보면, 나그네와 행인 같은 즉, 우리는 이 땅에 외국인과 나그네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 가운데 삶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 땅은 우리가 살아야할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 우리는 나그네인 것입니다. 히11:13절을 보면, 구약의 성도들도 이 땅에 살면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였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은 다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이 땅에 산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들의 언어와 관심사 이 모든 것들이 우리와는 다릅니다. 그렇기에 서로 멀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힘든 것입니다.
요일4:5-6절에서, 저희는 세상에 속했기 때문에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에 가서 동료들에게 신앙생활에 대한 얘기를 한다해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해있고, 우리는 하늘에 속했기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 그리스도인들끼리 만나서 서로 간증을 하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납니다.
자기 자신과 싸우는 그리스도인
세상에서 우리에게 있는 것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많은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말씀을 볼 때 베드로는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어려움 가운데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자신의 영혼이 정욕과 싸우는 문제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 영혼과 싸우는 것을 로마서 7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선을 행하기 원했으나 악이 함께 하는 자신을 보고 괴로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안에 거하는 육체의 정욕이 나의 영혼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환경과 다른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지만 신앙 생활을 할수록, 또 신앙이 깊어질수록 환경이 아닌 바로 어찌할 수 없는 자신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며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를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그만큼 신앙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통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렸을 때 가인의 마음 가운데 악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그것을 다스릴지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욕의 생각들은 우리의 영혼을 압박해 옵니다. 특별히 안목의 정욕은 어떻습니까? 진열장에 진열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볼 때 우리는 많은 유혹을 받습니다. 좋은 것들을 보았을 때 그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갖고싶어지고, 이로 인해 불화가 올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생의 자랑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녀교육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사실 상당 부분 이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 입니다. 어디 대학을 나오고, 어느 직장에 들어가고 하는 것들이 다 이생의 자랑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난치병에 걸린 아이들이 나오면, 자신의 아이가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또 누군가의 잘난 자녀와 비교가 될 때는 또다시 우리 영혼에 근심과 좌절이 오게되고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식욕, 성욕, 출세욕 등 이런 세상적인 모든 욕구들이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힘이 없게 얽어매는 것들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고 우리 육체의 정욕이 우리의 영혼을 거스려 늘 싸우는 것이며 그래서 늘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인식한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공고한 자라다 라며 탄식하고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며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이기기를 원하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고 자신을 통제해야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는 결코 육체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임무
마지막으로 또 한가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힘든 이유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해야할 임무가 정말로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는 법이었습니다. 이것은 순종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우리는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우리의 본성적으로 쉽지만, 악을 선으로 갚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12절에서 이방인 가운데 우리의 선한 행실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두 번은 쉽겠지만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에게 선으로 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밤 중 운전 할 때 빨간 신호등을 만나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런데 마음에 동요가 되는 것은, 내가 빨간 등에 서 있을 때 옆에 있는 차가 지나가며 나를 바보 취급할 때, 혹은 뒤에서 빵빵거린다면 여러분이 계속해서 신호등을 지킨다는 것은 정말 쉬운 임무가 아닙니다. 사회서든, 직장에서든 세상이 다 그렇게 가는데 나 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것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은 인간의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선행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막는 것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6,17절에 보면, 첫째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든 이유는, 우리는 세상에서 나그네요 행인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고 가치관이 다르고, 또한 그들과 시민권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안에 거하는 육체의 정욕이 계속해서 우리의 영혼과 싸우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인들이 행해야할 임무가 세상 사람들과는 정 반대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 가지 짐이 더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짐 곧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짐입니다. 신앙인들은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과는 달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가면 세상에서 힘들고, 혼자 있으면 육체의 정욕으로 힘들고, 교회에서는 성도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형제들로부터의 여러 어려움들을 당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 사람들은 그의 시대가 끝났다고 이야기했고, 어떤 이들은 그의 고통을 더하려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것을 듣고 오히려 예수가 전파되는 것에 기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어차피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며, 세상의 나그네이며 하늘에 시민권을 둔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시민권을 포기하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은 자들이기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국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며, 또한 우리 육체의 정욕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로부터 참 위로를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말 한 마디라도 서로를 위로하고, 힘있게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론
우리에게 한가지 희망이 있는 것은 주님께서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늘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보라 너희가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나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담대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으며, 거기에 더해서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서 주님 오실 때 우리가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힘든 신앙의 싸움을 계속해서 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자가 됩시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실하게 주님을 섬겼던 많은 선진들처럼 우리도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살수 있도록 주님을 바라보며 서로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