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혼의 목자

2008년 June 15일 ()

본문: 요한복음 10:1-21 |

주 제 : 우리 영혼의 선한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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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요한복음 10:1-21

 

설교자 : 조성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양과 같은 짐승에게만 목자가 필요하지 사람에게는 목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목자가 필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짐승의 삶은 이 땅에서 끝이 나지만 사람의 삶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25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상황에 대한 설명

 

우리 나라에도 그런 곳이 있는데, 이스라엘은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양우리가 있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는 한 곳이었고 문지기가 그 양의 문을 밤새 지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아침이 되면 목자가 각자 자기 양의 이름을 부르고 양은 그 목자를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마치 주인이 자신의 개를 부르면 개가 꼬리를 치지만 타인이 가면 경계하는 것처럼 여기 이 양들도 주인의 음성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이름을 부르고 앞서가면 그 목자의 양들만이 그를 따라갔습니다. 주님은 여기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본인이 양우리의 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선한 목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한 목자라고 하신 것은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선한 목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많이 들었지만 여전히 그 진정한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자의 필요성

 

과연 사람들에게 목자가 필요할까요?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간섭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실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해서 왕을 원했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그 목자를 떠나서 그 스스로 갈 길을 택했는데 그로 인한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잃었기 때문에 목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장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탄식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낙이 무엇이냐고 말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우리들은 영혼의 갈증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양의 우리의 문인데 다른 곳으로 넘어가면 다 절도요 강도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폐쇄적이라고 하는데 이는 쉽게 말하면 주님 만이 진정한 목자이고 다른 모든 세상의 종교 지도자들은 다 늑대이고 거짓 목자라는 것입니다. 거짓 목자들은 잘못된 것을 인간들에게 강요하여 인생을 허비하게 하고 약탈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깡통을 돌리기만 하고 어떤 사람은 1000km를 삼보일배하는 것에 의미를 둡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사탄은 거짓 목자들을 통해서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거짓 목자의 특성

 

거짓 목자는 첫째로 양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넘어 들어갑니다. 또한 양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우상이나 거짓 목자도 사람들의 안녕에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 지도자나 우상이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 자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 만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또한 거짓 목자는 이리가 오면 달아납니다. 양을 키워도 주인과 그것을 맡아 키우는 자는 다릅니다. 주인은 자기 양이기 때문에 양을 돌보고 이리가 오면 이리를 막으려고 하지만 삯꾼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주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전에 와서 “내가 생명의 길이다” 혹은 “내가 인생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다”라고 말했던 모든 사람들은 절도요 강도입니다. 사람들이 듣기에 불편한 얘기 같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곳에는 그들 나름의 신이 있습니다만 주님은 “나 외에는 모두 거짓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거짓 목자들은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고 헛살게하고 괴롭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일생을 거짓 목자들에게 매여 허비합니다. 로마서 8장 22절에 보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하고 있고 전도서 1장 8절에서는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는데 “왜 이렇게 인생이 피곤하냐”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원래 목자 되신 참 하나님을 사람들이 떠나 거짓 목자에게 갔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의 특성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양들의 안녕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한 목자는 양들에게 푸른 풀을 제공합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이 얼마나 풍성한 이야기 입니까? 양들은 어디에 풀이 있는지 위험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선한 목자는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놓으며 자기 양들을 잘 압니다. 10장 14, 15절 말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첫째로 목자가 양들을 잘 압니다. 우리는 양의 이름도 지어주지 않지만 선한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알 뿐 아니라 아버지가 자기를 아는 것만큼 우리를 아십니다. 우리의 목자는 우리의 약점과 장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입니다.



진정한 양의 특성.

 

그리고 또 한가지 배워야 할 것은 양도 목자를 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양이 된 사람은 그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그 목자의 음성을 알지 못한다면 목자의 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와 주님의 관계를 통해 우리와 주님의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친밀하게 서로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목자의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목자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 양의 특징은 그 목자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이론적인 관계가 아니라 실질적인 관계입니다. 그 어떤 양도 목자의 음성을 듣고 도망가지 않습니다. 짐승도 주인과 주인이 아닌 사람들 구별할 줄 압니다. 여러분보다 앞서 행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따르고 계십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양입니다.



결론

 

사람들에게도 진정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가 없는 자는 주인 없는 양과 같습니다. 주인 없는 양은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약탈 당하고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영혼의 목자에게 돌아왔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아직 이 목자를 만나지 못하셨다면 정말로 불행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음성을 듣고 앞서 가시는 그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 목자의 음성을 듣고도 따라가지 않는 것은 그의 양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잘 아시고 인도하시고 앞서가시는 우리 영혼의 목자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의 음성을 듣고 잘 알고 따라가고 계십니까? 선한 목자가 우리에게 있음에 감사하고 그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주의 양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