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을 입으신 말씀

2007년 September 16일 ()

본문: 요한복음 1:14-18 |

주 제: 육신을 입으신 말씀

 

본 문: 요 1:14-18

 

설교자: 조 성 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연말이 되면 일 년 동안 있었던 여러 뉴스들 중에 가장 큰 뉴스를 정리하여 보여주곤 합니다. 지난 백 년 동안의 가장 큰 뉴스는 무엇일까요. 만약 인간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많은 뉴스 중에 가장 큰 뉴스를 뽑는다면 무엇일까요. 아담의 범죄도, 노아의 홍수도 큰 뉴스이겠지만 무엇보다 큰 뉴스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뉴스일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심

 

온 우주에 계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것은 놀랍고도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면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에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리로만 존재하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천사들의 환영이 대단했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영원 안에 계신 분이 시간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시간의 제약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나이가 20살도 되시고 30살도 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지금부터 짐승의 모습이 되라고 하거나 짐승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라고 한다면 그는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으신 것은 이와 같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농장의 돼지들이 먹이를 서로 먹으려고 밀치며 싸우는 모습과 같았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많은 돈을 가지고 싶어서 다투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흑암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없기 때문에 웃을 일도 없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분으로 사람들 중에 거하셨습니다. 초자연적인 분이 자연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인간과 같이 사셨습니다. 심한 풍랑 속에서도 배 안에서 주무셨던 예수님은 인간의 피곤을 모두 느끼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은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에 가서 먹을 것을 찾으시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의 몸으로 제한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느끼는 피곤과 배고픔 등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신성이 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흑암 가운데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접근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의 모든 신성을 보이셨습니다.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 안에 하나님의 모든 신성을 가지고 계셨고(골2:9), 그것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요일4:2).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나타남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을 보고 싶어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보고 싶어 했을 때, 하나님은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모세와 아브라함이 봤던 하나님은 인간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는 말씀처럼, 인간이 볼 수 없는 하나님께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6장 45절에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라고 말하고 있고, 요한복음 14장 8-9절을 보면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말합니다. 빌립의 마음도 우리와 같아서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 6장 1-5절을 보면 이사야가 하나님을 본 모습이 나와 있는데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하였고, 에스겔도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내가 본즉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겔1:26-28)”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2-20절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그 앞에서 죽은 자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제대로 보면 그 앞에서 살아있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위대하신 분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은 매우 축소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무능하고 별 볼일 없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

 

15절에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16절을 보면 예수님에게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말합니다.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자발적이고 제한 받지 않는 사랑의 은사’를 가리킵니다. 은혜는 제한 없고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은혜를 베푸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와 간음한 여인, 우물가의 여인과 세리 등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러 나온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 조건 없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러라”는 말씀은 은혜가 넘쳤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은혜이지만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매 장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험난한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이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오셔서 진리를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거짓 가운데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거짓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진리이고 이와 다른 건 모두 거짓입니다. 세상은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성경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인생이 허무한 것입니다.

 

온 세상은 다 흑암가운데 있고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져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세상에서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면 결국 거짓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거짓을 따라간 결과는 분명합니다. 좋은 학교를 나와서 돈이 많아서 행복하다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서 주셨지만 은혜는 예수님을 통해서 온 것입니다. 율법은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한 것, 사람이 얼마나 죄악이 많은 존재인가를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은혜를 가지고 오셔서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진리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것 두 가지, 하나는 은혜이고 하나는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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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셔서 사람과 함께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알려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단의 속임수에 속아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원이 은혜이고 현재 우리의 삶이 은혜이며 장차 우리의 소망이 은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대로 하늘의 기업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가 얻은 유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떤 자들이었는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 하늘의 큰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우리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