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목적

2007년 March 11일 ()

본문: 로마서 7:7-14 |

주 제 : 율법의 목적

 

본 문 : 롬 7:7-14

 

설교자 : 조 성 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로마서에는 특별히 “믿음, 은혜, 죄, 율법, 의” 등의 용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법적인 면에서 우리의 죄를 다루고, 그 죄가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을 다루며, 또한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의 유대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명령하신 법, 즉 율법이 모두 613개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율법 가운데 248개는 예식이나 의식에 관한 법이며, 또 다른 365개는 금지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많은 법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 많은 율법 앞에서 죄인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법이 우리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법 앞에서 떳떳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운전하는 분들은 인정할 것입니다. 중앙선을 침범하는 것, 신호를 범하는 것 모두가 죄입니다.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율법 안에서 의로운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이 죄인가?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부터 계속해서 말해온 것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 분류로 나누면,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반면,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택받은 민족은 오직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해주시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에 매달려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선택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함께 하실 것과 구원하실 것, 또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신도 살아서 그 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친히 말하고, 위로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유대인들을 살아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친히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은 본래 사람들이 다 지킬 수 없게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율법을 다 지켜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유대인들은 교만했고, 그래서 다른 무할례자들, 즉 이방인들보다 자신들이 훨씬 더 거룩한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소중하게 여겨, 매우 열심히 율법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들이 교만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기에만 전념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죄인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그렇다면, 율법이 죄가 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율법을 좇아갔는데 죄인으로 드러났으니, 율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질문에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율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단혼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 하반절에서 율법을 통해 죄를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와 함께 사도 바울은 율법이 탐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탐심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도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어떤 신자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이야기를 하면서,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목사님께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그 신자에게, 사람에게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고 말했지만, 그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목사님이 그 신자에게 식사 초대를 했습니다. 초대에 응해 목사님의 집에 온 신자는 부엌 가운데 덮어놓은 접시 속에 무엇이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잠시 나갔다 올 테니, 그 접시는 절대 열어보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을 기다리던 신자는 너무도 궁금해서 결국 참지 못하고, 그 접시를 열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속에 있던 새가 부엌을 마구 날아다니는 것이 아닙니까. 당황한 신자는 그 새를 잡으려 했고, 그 때 목사님이 들어왔습니다. 그 때 그 신자는, 사람은 하지 말라는 것을 더 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이 내 안에 있는 각종 탐심을 일으켰다.’ 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많은 율법이 우리 안에 있는 정욕을 일으켜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죄의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마치, 감나무가 살아있을 동안은 계속해서 해마다 감을 맺듯이, 율법이 있는 동안 우리는 죄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선한 것이며 온전한 것입니다. 율법을 사람들에게 적용시켰을 때, 그 사람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지, 율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심판의 근거를 삼기 위함입니다. 롬 4:15에서는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받음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율법에 비춰보았을 때 죄인이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도, 자기의 마음의 법, 즉 양심이 죄인임을 증거하므로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됩니다. 우리는 TV에서 범죄한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왜 그들이 저지를 죄에 대하여 떳떳하지 못합니까? 그것은 그 속에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양심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으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는 완벽한 것입니다. 막 12:30,31에서 주님은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는 완벽한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셋째로,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롬 3:20) 13절 말씀에서 바울은 죄를 더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검정색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보색인 흰색을 테두리로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단순히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서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을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많이 지킨 사람일수록 교만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했습니다. 그들 역시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죄인일 뿐인데, 교만했던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비를 구할 때, 그분의 은혜에 힘입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람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인간의 문제입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있었다면, 구세주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온전하고, 또 생명에 이르게 하는 율법이 사람들에게는 사망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마음 먹은 대로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 육체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저내랴.”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상태를 깨달아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언가 지켜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십일조도 정확하게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콩을 수확하면, 정확하게 10개 당 하나를 분리해서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의 노력에 불과한 것이며, 온전치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고달픈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1장 8절에서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말했고, 바울도 롬 8:22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고달픈 삶을 사는 인간을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고, 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남는 것은 수고와 슬픔 뿐입니다. 가을날 낙엽이 떨어지면, 마음이 공허하고 쓸쓸한 것 역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주님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목마르지 않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며, 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진정한 쉼과 평안, 자유가 있는 삶으로 인간들을 초청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초청을 무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경고하십니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8-29)”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구원의 길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이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행 4:12) 이 세상에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다른 종교를 통해서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화목 제물로 준비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게 함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고, 주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원의 조건은 다른 것이 아닌 오직 믿음이며, 그 바탕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셨고, 믿기만 하면,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결론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합니다.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그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려고 합니다. 한 부류는 무엇인가 자기의 노력으로 그것들을 벗어버리려고 하는 사람이며, 다른 한 분류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짐을 벗어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 그 짐을 벗어버리려고 노력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율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며, 온전한 것이지만, 그것을 지켜서는 하늘 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단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해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 뿐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물로 그리스도를 준비하셨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게 해주셨습니다.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신 분은 솔직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가서 여러분 자신을 내려놓고, 죄를 고백하며,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해주신 일들을 믿고, 주님을 구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영접하신 분들은 더 이상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을 의를 내세우지 마시고, 또한 그것이 구원을 유지시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함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