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소망(2)

2006년 December 17일 ()

본문: 로마서 11:11-36 |

주 제 : 이스라엘의 소망(2)

 

본 문 : 롬 11:11-36

 

설교자 : 조 성 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로마서를 공부해 보면,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보면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놀라운 진리들을 서신서들을 통해 기록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 그리고 이방인의 구원계획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려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아닌 불순종 가운데 있는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제 이스라엘을 불순종 가운데 두신 것은 그들 역시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방법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깊고, 다 알 수 없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이방인에게로 간 구원

 

사도 바울은 11절에서 이스라엘이 넘어지긴 넘어졌는데, 그렇다면,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넘어졌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또 이스라엘이 넘어진 것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며, 그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진 시간 동안만 그들의 눈이 감기고 귀가 막힌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결국,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배웠듯이, 유대인의 넘어짐으로 구원은 이제 이방인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구원의 주요 대상과 기회가 이방인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25절에서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역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이유 역시 이스라엘이 구원의 기회를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마 23:27-39, 13:46) 이스라엘의 거절 때문에,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구원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거절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혼인 잔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잔치에 초청받았으나 오지 않은 자들이 있어서 자리가 비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즉 이방인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하나님의 예정하심(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과 자유의지(유대인들의 거절로 구원의 기회가 이방인으로 넘어감)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이방인들이 구원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은 또 다른 한편, 유대인들의 시기심을 불러 일으켜 그들 중에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 또한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은 골육, 즉 유대인들을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11:14)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의 구원 실패는 이방인들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이는,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것을 실패했음에도 이렇게 복이 되었는데, 성공할 경우에는 얼마나 더 하나님께 기쁨이 되겠냐는 것입니다.

 

구원의 뿌리

 

우리가 축복을 받는 것은 이스라엘의 축복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16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약속에 이방인도 함께 포함되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예를 들어 구원 계획의 본 대상은 유대인들임에 대해서 말합니다.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보다 참감람나무인 유대인들이 더 접붙이기 쉬우며, 또한 주인이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 중에서 어떤 것을 참감람나무에 접붙이기를 원하겠느냐고 물으며, 구원 계획의 본 대상은 유대인임을 확고히 말하고 있습니다.(11:17-18) 그저 이방인인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도 자긍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22절 말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이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구원받은 것에 대하여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구원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것을 거절하여 꺾인 것처럼, 이방인인 우리도 믿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뜻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절대로 행함에 있지 않기 때문에 행함으로 우리의 구원을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받는 것 뿐 아니라 구원을 유지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한 번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인지했으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도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눅 14:16-24)

 

그리하여 구원의 기회를 거절한 이스라엘은, 복음으로 말하면, 우리 이방인으로 인해 잠시 젖혀진 상태이지만, 조상으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구원받게 되어있습니다.(26절 :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방인들 가운데 충분한 수가 들어오면, 이방인의 구원의 기회는 끝나고 이스라엘로 구원의 기회가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대환난 기간의 끝 부분일 것이며, 민족적으로 메시아를 받아들여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

 

천사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구원받은 우리들과는 창조주와 피조물 이상의 더 깊은 관계를 갖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믿은 사람이라면, 영원토록 주님을 배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구원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그 은혜와 사랑에 감동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악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돼.’ 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할 때, 우리는 얼마나 더 나은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더 감사해야할 것은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나의 마음에 빛을 비추셔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시며, 또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것, 나로 하여금 하늘의 복된 소망을 가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나아와 나음을 입은 열명의 문둥병자 중 예수님께 감사하다고 말한 문둥병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복을 받고, 조상 때부터 하나님을 섬겼던 유대인인 아홉 사람은 똑같이 긍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이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감사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셔서 피 흘려 구원하여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하늘나라의 소망과 기업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가 감사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실 하나로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