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선택과 하나님의 진노

2006년 May 28일 ()

본문: 로마서 1:18-32 |

주 제 : 인간의 선택과 하나님의 진노

 

본 문 : 로마서 1장 18절~32절

 

설교자 : 조성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의 갈증 역시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인간의 받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이 하나님을 떠남으로부터 받게 된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시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떠남으로부터 생기게 된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버리고, 거짓 신을 섬기고,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따른 사람들의 선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지식

 

본문 말씀에서는 모든 사람들 안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 먼저,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풀 한 포기도 스스로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 말을 따라하는 앵무새나, 말귀를 알아듣는 개를 보고 놀라기도 하며, 또 그것들이 사람들 사이에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 주위에 있는 더욱 더 큰 소식들에는 놀라지 않습니다. 무성하던 잎들이 지고, 죽은 것처럼 되었다가, 다시 또 피는 자연의 일들에 대해 우리는 무감각합니다. 사실 그러한 것들은 인간이 결코 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입니다. 두 번째로, 인간에게만 주어진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풀을 뜯어먹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괴로워하는 소를 보시 못했습니다.양심은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악한 일을 할 때,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스스로 깨닫습니다. 이 양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몰랐노라고 핑계치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번도 교회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핑계치 못할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좋을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어려울 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하늘)도 무심하시지.’ 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욕합니다.

 

인간의 선택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남으로부터 그들의 고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그것은 사실입니다. 짐 진 것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인간의 삶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선택한 것의 결과인 것입니다.

 

첫 번째 인간의 선택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보다 더 잘 믿고 순종하려고 합니다. 어떤 날에, 어느 곳을 가지 말라고 말하면, 그 말에 따릅니다. 길거리에 있는 큰 바위나 나무를 두려워하고, 원숭이를 비롯한 짐승 등등 많은 우상을 섬깁니다. 그렇게 우상을 두려워하면서, 안 좋은 일을 당할 때면, 또 하나님을 욕하는 모순을 보입니다. 빌립보서 3장 19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인간들을 그대로 놔두셨습니다.(24절) 그 때, 인간들은 온갖 더러운 일을 추구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육체가 원하는 대로 하면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선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그들의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죄를 짓는 일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성적으로 급속도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구약 시대에 이미 성적 타락이 시작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근친과 동성연애가 있었고, 동물과 성행위를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역시 온갖 성적인 타락이 존재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타락에서 끝나면 별 문제가 안 될지도 모르지만, 두려운 것은 이 모든 타락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에게 나오는 자들에게는 큰 사랑을 베푸시지만,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는 무서운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좇았습니다. 세상에 거짓된 정보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 중에도 많은 부분이 거짓일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26절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그 결과로 우리는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만 먹고 살 수 있는 힘든 현실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사람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습니다. 사무엘상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왕을 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공급하셨는데, 곧 이스라엘의 왕이 되셨는데, 그들은 그것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하지 않고, 사람을 섬기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를 싫어합니다. 그 결과로 세상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셨습니다. 사람들이 왜 서로를 미워합니까? 그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시기하고 질투합니까?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질병 가운데 고통 받고 있습니까?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스스로 얻은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그 마음에 죄 짓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통제하지 않도록, 죄악 가운데 행하도록 놔두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악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이 다음 날 일어나서 술을 잘 마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도박이나 마약에 손 댄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 역시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멸망의 길로 가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권고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고, 죄악 가운데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임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영원한 형벌을 주시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1)”,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가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과 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무서운 진노의 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과 주님의 제자들은 거듭거듭 사람들로 회개할 것을 말했습니다. 또한 주님과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화목할 것을 말합니다. 무서운 진노의 날이 임하지 않도록 주님께로 돌아와 그분을 영접해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빛이 있고 은혜의 때가 마감되기 전에 하나님과 화목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산다면, 여러분의 인생도 망할 것이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그 위에 임할 것입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님으로 영접하셔야 무서운 진노에서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은 삶을 가치 있게 살고 싶으시다면, 하나님께 나오시길 바랍니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멸망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믿는 우리들은 계속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복된 일이며, 가치 있는 일입니다. 또한 즐거운 일이고 특별한 일이며, 기쁜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런 영광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