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자비

2005년 June 12일 ()

본문: 시편 109:4-15 |

주제: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자비
본문말씀: 시편 109편 4 - 15절
설교자: 조성훈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저희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악인으로 저를 제어하게 하시며 대적으로 그 오른편에 서게 하소서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그 년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그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 자녀가 유리 구걸하며 그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고리대금하는 자로 저의 소유를 다 취하게 하시며 저의 수고한 것을 외인이 탈취하게 하시며 저에게 은혜를 계속할 자가 없게 하시며 그 고아를 연휼할 자도 없게 하시며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저희 이름이 도말되게 하소서 여호와는 그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 어미의 죄를 도말하지 마시고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저희 기념을 땅에서 끊으소서."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자비」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길 원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편을 기록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다윗이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제 마음에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다윗의 미워하는 사람을 향한 저주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제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자신도 많은 사람을 미워했지만,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윗의 말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다윗은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신뢰하고,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다윗이 시편을 통해 이와 같은 저주를 퍼부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의 아들이 반역을 해서 다윗이 피난을 갈 때, 시므이란 사람이 다윗에게 저주를 했었는데, 다윗은 그를 죽일 것을 물어 본 신하에게 "하나님이 혹 그를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지도 모른다. 그를 가만히 두어라." 라고 말할 정도로 마음이 넓은 사람이 이런 저주를 했다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다윗도 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을 살펴보았을 때, 다윗보다 더 심한 저주를 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지옥이나 가라." 라고 했었는데, 이 말은 다른 어떤 말보다 더 무서운 말입니다. 이는 저주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저주인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 이러한 다윗을 쓰신 하나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물론 담대한 믿음의 신앙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에게 돌팔매 하나를 가지고 나아갔던 사람이었던 다윗이 아닙니까. 또한 다윗은 그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의 옷자락을 베는 것도 마음에 찔려했던 그런 좋은 면들이 많이 있었지만, 적에 대해서 이러한 저주를 퍼붓는 것을 보면서, 다윗도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고, 또한 그러한 다윗을 쓰신 하나님께서 참 대단하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삶
많은 사람들이 다윗의 삶을 부러워하지만, 알고 보면, 다윗의 삶이 그렇게 부러워할 만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삶에서 우리가 부러워할 만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입니다. 그렇게 위대한 신앙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나름대로 육체적인 여러 연약함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 또한 결코 평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그의 집안의 문제를 살펴보면, 그의 형제 사이에 근친 문제가 있었고, 형제들끼리 살인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아들이 왕권을 탐내 자기를 몰아내서 도망갔던 적도 있었고, 그의 친아들 압살롬이 자신의 후궁들을 다른 사람이 보는 가운데 간음한 일도 있었으며, 아도니아의 배반 등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삶은 더욱 험난했습니다. 사울을 피해 7년 동안이나 도망을 다니면서, 살기 위해서 때론 미친 척도 해야됐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살인죄와 남의 아내를 범하는 일을 하는 등 여러 가지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 감동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다윗에 대한 평가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비난하기에 마땅한 삶을 살았던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일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시고, 다윗을 사용하시고, 그를 통해 큰 일을 이루셨던 것을 보게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우리는 흔히 위대한 신앙인들을 생각할 때, 그들의 삶 모두가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신앙인들은 그 나름대로 연약한 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물론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신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인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육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합니다. 위대한 신앙인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마음에 복수심이 불탔던 사람이고, 예수님의 제자였던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화가 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이 마을을 불타게 할까요." 라고 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연약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연약함으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크게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여러 연약함들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크게 사용하십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왜 이러한 다윗의 무서운 저주가 기록되어있을까요? 이는 참으로 감사한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좋은 면 뿐 아니라 인간의 연약한 면까지, 모든 면이 다 드러나 있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세나 다윗이 위대했기 때문에 쓰임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모세를 생각해볼 때, 그 역시 태어날 때부터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나, 강물에 띄워서 버려졌던 기고한 운명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잠시 궁에서 화려한 생활을 보냈지만, 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목자의 일을 했고, 그 후 40년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하는 힘겨운 삶을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순탄한 삶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참지 못하는 성품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위를 명하여 물을 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바위를 쳤던 모습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고 말씀하셨지만, 그에게도 그런 부족한 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 역시 연약한 면이 있었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자였고, 떳떳하게 살았던 그였지만,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 주님께 "오실 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묻는 연약한 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는 것과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
로마서 7장 14,18-24절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 바울 역시 그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가장 먼저 깨닫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선을 행하길 원하는 우리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으나(그런 마음이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 소원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이 내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선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에 기쁜 마음을 갖기가 힘듭니다. 심지어 같은 날 구원을 받았는데, 다른 한 성도가 주님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죄악이 들어있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늘 괴로움이 따르는 것입니다.
한편, 선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의 소욕이 우리 안에서 늘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그것을 행할 수 없는 연약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다윗의 삶에서도 그러한 두 가지 마음들을 단편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골리앗에게 담대히 나아갔던 반면, 오늘 말씀에서처럼 혹독한 저주를 퍼붓는 그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용하셨고, 사도 바울을 사용하셨습니다.
저는 때때로 '태어날 때부터 좋은 성격으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주님을 섬기는 동안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는 문제가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체에 사람들이 멸시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괴로운 것이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해 주님께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사도 바울의 일생동안 그로 하여금 교만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분인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 제 아들과 딸이 다리를 다치게 됨으로 하나님께서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려 하는가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징계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편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게 큰 감동을 주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육체의 연약함을 이해하신다" 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저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때때로 징계를 받을 수도 있고, 교훈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로써 자식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또한 더 나아가 부족한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많은 선진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부활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알리셨습니다. 또, 따듯한 불과 떡, 고기를 준비하시고 베드로와 제자들을 기다리셨던 주님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무나 멋진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실수를 아시고, 연약함을 이해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한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 자를 쓰시지 않았습니다. 연약함이 없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쓰시는 사람은 죄를 지었을 때, 지었다고 말하고, 자신이 약할 때, 약하다고 말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다윗은 사람을 죽이고, 남의 아내를 빼앗는 등 여러 가지 무서운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연약함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록한 시편이 바로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자비와 긍휼이 한이 없으시다." 라고 말했던 시편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자를 쓰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시며,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게 "너희가 나를 위하여 수고한 모든 수고를 내가 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고, 항상 견책하지 아니하시는, 이런 놀라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복된 자들입니까. 우리의 주님이 그렇게 멋있는 분인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모세처럼, 또 요한처럼, 사도 바울처럼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 하나님의 집에 충성스러운 자" 라고 말씀하셨고, 요한에 대해서는 "여자가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 라고 평가하셨습니다. 또한 다윗에 대해서는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제가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은,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라고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코를 흘리고, 온갖 더러운 것들이 묻었을지라도 부모가 보기에는 사랑스러운 자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 대해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고, 주님 안에서 힘을 얻고 담대히 주님 앞에 나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