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자

2008년 October 26일 ()

본문: 요한복음 14:16-24 |

주 제: 주님을 사랑하는 자

 

본 문: 요한복음 14장 16절-24절

 

설교자: 조 성 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성령의 오심과 내주 - 구원 받은 자의 증거

 

‘보혜사’라는 말의 의미는 ‘주관하는 자’가 아닌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라고 하셨는데 여기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씀은, 이 땅에서 주님 역시 돕는 자이셨는데 주님이 떠나고 나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고 그분은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거하시며 하시는 일 중 하나는 우리를 진리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매일 듣는 정보 중에 90% 이상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는 사무실에 있으면서 전화를 여러 통 받습니다. 부동산에서도 전화가 오고 보험 회사에서도 오는데 그들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이 동네에 땅값이 오를 테니 지금 사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지 않고 우리를 진리로 이끄십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듯이 세상은 거짓투성이기 때문에 진리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성령을 받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성령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주님은 곧 하늘로 올라가실 것이기 때문에 세상은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지만 제자들에게 너희는 볼 것이고 너희는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 주님을 믿고 한동안 성령님에 대한 혼란이 있었습니다. 귀신 들린 자는 그가 귀신들렸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에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고 했는데도 말입니다. 마음 속에 뜨거운 것이 느껴진다든지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어떤 곳으로 몰아간다든지 하는 현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방언을 하거나 억지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령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 들어가면 그 영혼을 강점해서 그의 인격이 사라져버리지만,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우리를 강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셔서 돕는 자로 계십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10)”는 말씀처럼 성령님은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닙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4-16)”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이 계셔서 우리를 돕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롬 10:9~10). 영적인 것과 하늘나라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과 성도에 대한 생각, 주님에 대한 친밀감을 느낄 때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거나 꺼려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성령이 계시면 선을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약 2:14~26, 엡 2:10).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감동이 되고 깨달음이 있으며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요일 2:4~5, 5:2~3). 하나님의 말씀을 오래도록 들어도 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깨달음이 없다면 그에게 성령이 계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성령이 계시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세상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요일 2:15). 또한 죄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지 못하고(요일 3:9~10, 갈 5:21), 성도를 볼 때 친밀감이 있으며 성도를 사랑합니다(요일 3:14). 믿는 자로서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고백하게 됩니다(요일 1:8~9).

 

또한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롬 8:16). 또한 성령님께서 내주하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한 죄 때문에 더 이상 평생을 괴로워하지 않습니다(히 10: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들이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있어서 조금씩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귀신 들린 사람 중에 점잖고 인격적인 사람이 없고, 사단을 가까이 하는 사람 치고 정결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 주인을 닮아 행실이 더럽고 추하고 악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안에 거하신다면 그의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계속해서 성령의 생각을 넣으십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께서 그의 원하시는 바를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부딪치는 것입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 이것이 육신의 열매들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선함)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증거는 어떤 현상을 보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증거 또는 구원받은 자의 증거

 

가룟인 아닌 유다가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고 질문했는데 주님은 다른 대답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주님을 믿는 자들의 또 다른 증거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조건 없이 모든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사랑하는 자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물론 주님이 편애하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열매 맺는 가지는 더욱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가지를 깨끗케 하신다고 하셨는데,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가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들을 볼 때 주님을 참 사랑하는 자는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35)”,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사랑하는 것과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다릅니다. 동일한 부모가 사랑하지만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녀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자녀가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근심을 주는 자녀가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결론

주님을 믿는 자는 두 가지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이 그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 안에 있다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증거는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부르지만 그 안에 성령이 있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지만 조금씩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계신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다 해도 할 수 있는 한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는 자로서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할 때마다 진리와 새로운 생각으로 하나님에 대한 마음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주님의 계명을 지킬 때 주님은 그에게 사랑을 보이시고 아버지께서 함께 계심을 보이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강점하지 않으시고 나를 도우시는 성령님이 내가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영원토록 내 안에 계셔서 나를 도우실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짧은 생애를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가장 값진 일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