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오심에 대한 소망

2011년 January 2일 ()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11 |

주 제: 주님의 오심에 대한 소망
본 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절
설교자: 조 성 훈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것 같이 하라”

새해가 되면서 주님의 오심이 일 년 더 가까워졌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주님께 갈 해가 한 해 더 가까워졌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간이 가면서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소망이 점차 흐려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오심에 대해 잊어버리고 이 땅에서의 삶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는 모르지만 늘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5:1)” 왜냐하면 그 때와 시기를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분명히 성경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와 시기는 모르지만 날짜는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나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 하늘에 대한 소망은 사라지고 점점 현실이 머릿속을 차지해서 주님의 오심을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일상에 젖어있는 것입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5:2)” 도적이 오는 것을 미리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집에 두고 “금방 올게”라고 했을 때 아이는 계속 긴장하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언제 오신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셨다면 기다리기가 좀 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도적과 같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5:3)” 아이를 낳는 것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정확한 시간은 알지 못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5:4)” ‘빛의 자녀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키고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는 사람은 믿지 않는 자들, 즉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깨어서 주님을 맞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부모님이 집을 나가시면서 해질 무렵 돌아온다고 하면 생각이 있는 아이라면 그 시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도 역시 다시 오실 때 이런 저런 현상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 무감각하고 말씀에 대해 둔해 있다면, 주님의 오심을 덫과 같이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5:5)”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도 모두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며 맞이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 주인을 준비하지 않고 맞이하는 종은 매를 맞을 것이고, 준비하고 기다린 종은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직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왔을 때 가족들이 모두 깨어서 맞이할 때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주님 역시 그러하실 것입니다.

낮에 속한 사람과 어둠에 속한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어둠 가운데 있다면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 즉 빛 가운데 속한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자들과 주님의 말씀에 깨어있는 자들을 빛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오심에 가까워 올 때 정치적, 종교적,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마련인데 오늘날은 그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마 24:6-8, 딤전 4:1, 딤후 3:2-5).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5:6-8)” 여기서 ‘자는 것’은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것, 감각이 없어 양심이 마비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둔하여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있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구원받고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을 경험하니 그분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장래가 눈에 보기에는 캄캄해보여도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흉배’는 성도 간에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시기하지 않고 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는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소망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5:9)”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을 위해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 자유가 없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우리로 자든지 깨든지 주님을 위해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더 할 수 없이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오심이 가까워 옴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깨어 있다면 영적인 눈이 밝아 주님의 오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