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주를 향한 순수함과 정결함과 진실함
본 문: 고린도후서 11장 1-3절
설교자: 조 성 훈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 순수한 여인을 그리스도인에게 중매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남편으로 맞아 살아가는 결혼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3) 오늘날에는 결혼생활이 많이 부패되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중매를 할 때에도 신랑이나 신부감에 대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그가 돈이 많으냐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돈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부부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결혼할 때 아파트를 해오지 않아서 갈라서기도 한다고 합니다. 결혼생활에서 순수함과 진실함, 정결함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그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도 부패되어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3:1)”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외식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 이는 마치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밥을 하고 빨래는 하지만 남편을 사랑하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점점 형식은 남고 마음은 없어지게 됩니다.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진실 없는 거짓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은 없으면서 교회를 나가고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고 구제했습니다. 오늘날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기부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도 모르게 형식에 붙잡히게 되고 마음 없는 외식만 남게 될지 모릅니다. 주님을 향한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되지 않기 위해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가 받아야 할 영광을 사람이 취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받아야할 영광을 가로챌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내가 일한 것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결국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에 순수함을 지키려면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양심 자체가 살아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살아있지 않은 마음 밭에 순수한 신앙은 세워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그 양심에 괴로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정상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사도 바울의 이러한 고백에는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선한 양심이 담겨있습니다. 원하는 만큼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원하는 만큼 선을 행하지 못하여 괴롭고, 그러한 삶을 방해하는 육체의 정욕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작은 일에도 괴로워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선한 양심입니다. 이것이 또한 살아있는 신앙의 증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에서 떠나버렸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그의 재력이나 외모를 따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향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신앙인이라면 배우자의 속사람, 그의 영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될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끌려갔지만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때 많은 유혹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열정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욥은 재산을 잃고 자녀가 죽었어도, 온몸에 고통을 가지고 있었어도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마음과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순수함에서 멀어지게 되면 성령의 역사나 가르침에 대해서도 무뎌지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것에 무심하게 되고 감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10)”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 재물을 가져 왔는데 병들고 못 먹고 하찮은 짐승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재물이 아까워 하나님께 못난 것을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는다면 어떨까요? 어버이날 부모님께 식사대접을 하는데 라면을 끓여준다면 어떨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눈동자처럼 지키시며 인도하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를 병들고 하찮은 것을 드리다니요. 시장에서 생선을 사와 가장 맛있고 영양가 있는 부위를 자녀에게 주고 별볼일 없는 꼬리부분을 남편에게 준다면 남편의 마음이 어떨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향한 순수함과 진실함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첫째자리에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에 첫째자리에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패되어 있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자신을 신뢰할 때 기뻐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이 있을 때 우상을 찾거나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순수함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물질이나 환경이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때도 주님께 어떤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주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고난과 수치를 당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그의 아내로 맞아주셨습니다. 그런 우리가 그리스도의 아내된 자로서 아내의 의무를 다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를 향한 진실함에서 떠나있습니다. 주를 향한 애틋한 사랑이 사라지고 세속적인 욕심으로 마음이 채워져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마음가운데 주님을 향한 순수함과 진실함을 가지시고 주님을 첫째자리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순수함을 지키시고, 외식자가 되거나 선한 양심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