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의 자랑

2007년 June 3일 ()

본문: 고린도전서 1:26-31 |

주 제 : 주 안에서의 자랑
본 문 : 고전 1:26-31
설교자 : 조 성 훈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집안에 유명한 사람이 있는 것이나 남들에게 없는 것을 갖고 있음에 대해서, 또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자랑하는데, 자랑하는 것들을 살펴보면 모두 남들과 비교해서 더 좋은 것들입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좋은 것은 자랑하고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감추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말씀을 합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택하는 기준
사도 바울은 26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는 지혜 있는 자나 능력 있는 자,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즉, 그들 가운데 세상적으로 내세울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역시 교회에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에는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택하시는 기준이 ‘세상에서 얼마나 성공했는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친구로 삼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지혜 있는 자를 원합니다. 다시 말해, 좋은 학교를 나오거나 학력이 높은 사람, 교수나 의사, 변호사들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대학을 나오거나 뛰어난 학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봅니다. 배운 지식에 따라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절대로 학식이나 지혜를 사람을 택하는 기준으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로 삼은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습니까? 대부분의 제자들은 갈릴리 지역에 사는 무식한 어부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무식한 어부들을 사용해 전 세계를 복음화 시키려고 하신 예수님의 선택은 너무도 무모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기업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자 하는 사람이 무식하고 글도 잘 못 읽는 사람을 사원으로 기용한다면 사람들은 그 사장을 비웃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자녀들을 일류대학에 보내려고 안달입니까? 일류대학에 나온 사람들을 알아주고 그래야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사람들이 인정해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을 선택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그러한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믿는 성도들도 그러한 사람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까?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뛰어난 학식과 학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이 많이 배운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자세는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학식과 지혜를 기준으로 사람을 선택하시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사람들은 능력 있는 자, 권력을 가진 자를 선호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갑부를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문벌이 좋은 사람을 선호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는 가문을 많이 따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상들 중에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이 있거나 대대로 벼슬을 해왔던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또한 정계나 학계에 그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 많은 집안, 조상 때부터 경제적으로 부한 집안을 선호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아들딸들을 좋지 않은 가문으로는 시집, 장가 보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적인 가치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혜 있는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가 고린도 교회에 많지 않음을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택하신 기준
사도 바울이 27-28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기준은 세상 사람들의 기준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미련한 자를 선택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선택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미련한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선택 받은 사람들은 모두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미련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해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약한 자를 선택하신다고 말합니다. 2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천대받고 무시당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11:26-28에서 스스로 지혜 있고,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을 숨기시고, 어린 아이와 같이 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에게 드러내셔서 그들을 구원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6:20 ; 4:18-19) 성경 어느 곳에서도 부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이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연약한 자들을 선택하셨을까요? 첫째로, 아무도 그 스스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29절) 만일 사람들이 자기의 선행이나 그 무엇으로 하늘나라에 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공적과 선행 등을 자랑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 천대받는 자, 멸시 받는 자, 가난한 자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에게는 하나님 이외에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을 자랑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30절) 우리의 잘난 것으로 택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자랑할 것은 주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엡 2:5-7에서 바울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기 위에서 우리를 우리의 선함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택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택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문제
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길 원하며 명예와 권력을 얻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리석고 가난해서 우리를 택하셨는데 우리는 부자가 되길 원하고 명예와 권력을 찾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어리석고 천대받고 약한 자들 중에 선택 된 사람들인데 누가 더 지혜로운지, 누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지를 가지고 싸웁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제자들의 싸움은 어떠합니까? 천하고 무식한 자들이 서로 자기가 높다고 싸우는 것은 참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의 영광과 하늘에서의 큰 상급을 주셨는데 세상에서 누가 더 큰지를 따지며 싸웠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 자신도 그들 중에 섬기는 자로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 역시 제자들과 같은 이유로 싸웠습니다. 그들은 재산과 학식 등으로 서로를 구별했습니다.(고전 4:7-9)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사람들을 선택하신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 싸우지 말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어리석고 미련하고 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것이므로 누가 더 지혜롭고, 지위가 높은지를 따지며 싸우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서로를 구별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거나 돈이 많거나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는 잘 대하려 하고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거나 별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세가 아니며 우리가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하시는 기준을 잘 모르기 때문에 행하는 잘못입니다.

주 안에서 자랑하라
사도 바울은 다른 것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서 얼마나 큰 부자가 되었습니까? 또 얼마나 지혜로운 자가 되었습니까? 우리는 하늘의 큰 상급을 쌓아놓은 부자가 되었고, 주님의 복음과 영원한 생명을 아는 지혜를 가진 자가 되었기 때문에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 안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우리의 보호자, 공급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주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의 주님을 자랑하고, 우리의 왕 되신 주님을 자랑하며 그분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가 가진 영원한 축복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 하늘의 기업, 영원한 영광, 새로운 부활의 몸, 진정한 안식, 진정한 기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우리는 주님 안의 형제, 자매들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고후 1:14)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의 약한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세계 최고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다면, 제자들의 역사는 모든 사람들이 수긍할만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마땅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천대받고 멸시 받는 자들을 택하셔서 세상을 바꾸어놓으셨고 그들을 통해 큰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주님 앞에 온전한 삶을 살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임해야 했던 것은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라고 말했습니다.(고후 11:20 ; 12:9-10) 우리 또한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우리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살아가야 할 이유 중 하나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실 때 집안이나 돈, 권력, 그리고 지혜에 있어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자를 구원하지 않으시고, 어리석고 천시 받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 모두 못나서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 우리의 집안이나 권력, 지식을 자랑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러한 것들에 근거해서 형제, 자매들을 편해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길 원하시는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땅한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