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교회

2009년 May 24일 ()

본문: 요한계시록 3:1-6 |

주 제: 죽어가는 교회

 

본 문: 요한계시록 3장 1-6절

 

설교자: 조 성 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교회 중에는 주님에 대한 사랑을 버린 교회가 있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교회도 있으며 본문의 교회와 같이 죽어가는 교회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죽어가는 모습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들을 보면 진정으로 거듭난 자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가고, 그렇지 못한 자들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데 교회에 대한 소개

 

사데 교회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그 결과로 세워진 교회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리디아 왕국의 수도로서 매우 번성했던 도시였는데, 많은 이들이 말하기를 이 도시는 너무 부했기 때문에 망했다고 합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부가 도에 지나치면 파멸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부는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타락을 가져오고 사람 자체를 망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신 가나안 땅에 살던 사람들도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 사람들일수록 비교적 순수함이 보존되어 있고, 부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일수록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에 보낸 사자들이고 일곱 영은 하나님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교회에서 일하는 일꾼들에 대해서 큰 책임을 묻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우리의 마음의 동기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오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 오해란 있을 수 없고 잘못된 판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교회에 대해서는 칭찬이 없습니다. 오히려 죽은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번창하고 있는 교회들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활동도 하고 이웃을 구제하기도 하고 방송을 하는 등 살아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실상은 죽어 있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비극적인 모습입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 큰 교회 세력이었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교회들과 같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도 교인들은 많지만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면 이는 살아있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교회 안에 구원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확연히 구분이 되었지만 이제는 점점 그 선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전혀 구분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주님이 저에게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싫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살아온 60-80년대보다 앞으로 청년들이 살아갈 세대가 훨씬 더 타락하고 어려운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몇 십 년 후에 이 교회가 어떤 모습을 갖춰갈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중에 몇 명이 흰옷을 입고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은 그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 있다는 말입니다. 어디든 100% 구원받은 사람들만 있으면 좋겠지만 항상 마귀는 교회 가운데 가라지를 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신실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죽은 사람들만 많다면 이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교회 건물이 근사하고 활동을 많이 할지라도 주님이 보시기에는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로 가득 찬 교회인 것입니다.

 

또한 죽은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이지만 상태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죽은 상태에 있는 신앙인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돼지 독감은 전파력이 얼마나 강한지 같은 비행기를 타도 감염이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기독교는 함께 있기만 해도 감염이 될 정도로 복음의 전염성이 강했습니다. 이를 온 천하에 퍼진 염병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인과 접촉을 해도 아무리 문질러도 감염이 되질 않습니다. 이런 교회를 어떻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교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의 성공에만 관심을 두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현실에 안주하는 교회는 점점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또한 죄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누룩처럼 급속도로 퍼져나갈 때 교회는 죽어갑니다. 성도들이 영적인 것보다 육적인 것에 마음이 집중되어 갈 때 교회는 죽어갑니다. 우리는 다방면의 교제가 필요하지만 영적인 교제 중심에서 점점 육적인 교제 중심으로 변해가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와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것이 대화의 주제가 되어야 하는데 대화에서 점점 영적인 것이 사라져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영혼을 구원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좋은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에 관심이 집중될 때 교회는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게 되고 점점 죽어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향우회, 친목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높이고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며 하늘나라의 복된 소망을 전해야 하는 등대입니다. 등대가 빛이 점점 꺼지면 바다의 배들은 부딪치게 됩니다. 교회가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서 하나의 화목단체로 전락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대한 주님의 권고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죽어가는 잠에서 깨어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처음 시작했을 때 영혼과 주님에 대한 열정, 교제의 즐거움,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다시 생각하고 그때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는 것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굳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점점 영적으로 일깨움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대로 가야합니다. 만일 처음 행위로 돌아가지 않으면 주님께서 도적같이 오셔서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 중에 신실한 자들에 대한 격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불신자들로 차 있는 교회에 진정으로 거듭난 자들이 몇 명 있다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한 사람이 태반인데 도덕적, 신앙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 몇 명 있다는 의미입니다.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은 주님으로 옷 입었다는 의미이자(마 22:10-13), 일상생활의 거룩한 삶의 모습(롬 11:4-6)을 의미입니다.

 

승리자들에 대한 약속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상태에 따라서 생명책에 있는 이름을 지우거나 다시 쓰거나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이 말은 거듭나지 못한 자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원받고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것처럼 주님도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십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즐겁습니까. 다른 모든 것은 버려두고서라도 내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주님을 믿지 않은 분들은 주님께 구원받게 해달라고 매달리며 애원해야 합니다. 지금 주님이 오셔서 믿는 자들을 데려가실지 모릅니다.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세상 가운데 얼마나 영향력이 있고 전염성이 있는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몇 년을 같은 회사에서 함께 생활해도 복음이 전염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것입니다. 세상의 영향력 있는 균은 같은 공간에만 있어도 전염이 되는데 왜 그리스도인의 균은 전염이 안 되고 오히려 치료가 되는 것입니까. 나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가하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