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추수할 일꾼
본 문: 요 4:27-38
설교자: 조 성 훈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제자들이 음식을 구하러 들어간 사이에 예수님은 여인과 대화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돌아와서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게다가 남자와 여자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들이 보기에는 이상했던 것입니다.
여인의 간증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분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메시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래전부터 기다리던 구세주입니다.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만난 메시야를 사람들에게 전한 여인의 열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사람들은 사도들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열심인데 나는 차라리 구령의 열정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간 사마리아 여인의 후계자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구원 받은 지 오래되고 성경을 많이 공부한 사람이 갓 구원받은 사람보다 전도를 많이 하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사람들에게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이 여인은 음란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우물가에 나올 때도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사람들에게 가서 “와 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양식
제자들은 동네에 가서 먹을 것을 구해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음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양식을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육적인 양식을 생각하고 “누가 갖다드렸는가”하고 생각했습니다. 34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양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먹는 재미에 사는 것 같습니다. 전국의 유명한 식당을 알고 그것을 먹는 일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남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내 음식이요 내 뜻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마치는 것, 이것이 주님의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였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영적인 것을 중요시하고 어떤 사람은 육적인 것을 중요시합니다. 롬 14:7-8에 사도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하였고, 요 6:27에 주님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수하지 않은 물 한 컵 안에는 대한민국의 인구보다 더 많은 미생물이 있다고 합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우리의 손에도 수많은 균이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세계에서 비롯해서 우주의 큰 운하가 있는 것처럼 세상은 이렇게 방대하지만, 인간은 그 중에서 너무 작은 것도, 너무 큰 것도 보지 못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존재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세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일했습니다. 그것은 썩을 양식(이 땅에 살면서 먹고 마시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양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사도바울은 행 20:24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그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준비된 추수 때
35절의 말씀도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이해한 것과 다릅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사느냐 하는 관심에 따라 똑같은 현상도 달리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추수’는 영적인 추수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넉 달 뒤에 추수할 때라는 사실만이 보일 뿐입니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어야 보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온 사람들, 주위 사람들을 보시면서 추수 때를 기다리고 있는 곡식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면서 우셨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유대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음을 보시고 슬퍼하셨습니다. 눅 19:41-42에는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성 건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성에 살고 있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평화에 관한 것을 모르고 멸망해가는 것을 슬퍼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이 감겨 있어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육체로는 영적인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것을 보는 눈은 믿음의 눈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사람들의 상태가, 우리의 장래가, 영적인 세계가 보입니다. 영적인 눈이 띄어 있으면 주님의 오심이 얼마나 임박한지, 영혼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비참한지가 눈에 보이고 마음에 느껴집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는 왜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요. 텔레비전의 슬픈 실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듯이 우리에게 믿지 않는 자들의 비참한 장래가 보인다면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신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친 사도 바울의 눈에도 그것이 보였습니다.
추수에 참여한 자들
우리는 무엇을 추수하기 위해 노력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 바쁩니다. 우리 역시 돈을 더 많이 모아 좋은 집을 사고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노년에 고생을 덜하고 편히 살게 될 것을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나 영혼의 가치를 진정으로 안다면 그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어떤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힘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비닐 백을 들고 물건을 주우러 다닙니다. 우리가 죽어가는 주위의 영혼을 생각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추수를 준비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부터 인간에 대한 구속사역을 시작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하셨습니다. 그 일에 우리가 지불한 값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거둬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신실한 종들은 복음을 세상에 증거 하다가 핍박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짐승의 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포도원의 비유와 같이 하나님께서 많은 종들을 보내셨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거절했습니다.
목이 곧은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셨는데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씨앗을 뿌리셨고,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에 근거해서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추수할 때가 된 곡식을 거둬오라고 명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뿐입니다.
예수님은 ‘추수의 즐거움에 참예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전도할 때 그가 구원을 받으면 매우 좋아하고 그것을 자신의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면 자신이 참여한 부분은 극히 작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심지 않은 것을 거두고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는 자들이다”
결론
우리 주위는 온통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 추수해야 할 곡식들이 그냥 썩도록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으로 바라본다면 우리 주위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이 열리면 우리가 얼마나 헛된 것에 눈이 멀어 살았는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70-80년을 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비중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영적인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똑같은 직장생활을 해도 영적인 것, 하나님께 목적을 두고 산다면 삶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솔로몬과 시편 기자가 말해주듯이, 모든 삶이 헛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영적인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추수에 참여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영적인 눈을 떠서 무엇이 과연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적인 추수에 참예하시기를 바랍니다. 추수 때가 끝나면 주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이고, 우리에게는 하늘나라에서의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