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히브리서 12장 15절-29절
주제 :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
설교자 : 조성훈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만한 불 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오늘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라는 주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세 가지 것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쓴 뿌리가 나서 신앙의 본연의 자세에서 멀어질까 두려워하라, 셋째는, 잠시의 낙으로 인해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5절에는 너희를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지금 이 가운데 계시지만 아직까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권고하는 것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동산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계속해서 교회 참석은 하고 있으나 결국에는 하나님에 은혜에 이르지 못하고 세상으로 흘러가 버린 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면서도 아직까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가 있는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들의 관심과 돌아봄이 필요합니다. 이런 말씀을 전할 때 가장 애석한 사람 중 한 명이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혔던 강도 중 한사람입니다. 두 강도는 똑같이 예수님을 만났지만 한 명은 예수님을 만나서 은혜 아래 들어갔고 한 명은 예수님의 은혜에서 멀어졌습니다. 저 역시 목회 생활 가운데 영혼의 구원을 위해 애써보지만 그들이 여전히 예수님의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볼 때 굉장한 허탈감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 모인 분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이를 수 있도록 본인과 성도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쓴 뿌리
두 번째로, 신명기 29장 18-19절을 보면, 쓴 뿌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신을 섬길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는 항상 악한 주동자들이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애굽으로 돌아가자.' 라고 외칠 때 백성들이 그것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나타날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이런 쓴 뿌리가 나서 교회 성도들을 그 원래의 신앙 생활에서 멀어지고 세상으로 가게끔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모아놓고 너희 중에 자기를 좇게 만들기 위해서 어그러지는 말을 하는 자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별히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지도자들이 그런 일을 행할 때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일에 있어서 각자 스스로를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잡혀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며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라고 말했을 때 베드로와 제자들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지만 결국 베드로가 가장 먼저 배신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베드로가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라고 외쳤을 때 다른 제자들도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신앙에서 멀어지게 하는 장본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성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성도들을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쓴 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너희 중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쓴 뿌리는 많은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자들이 절대 나타나지 않도록 본인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가 교회에 없는 것은 참 큰 복입니다.
잠시의 낙으로 인해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망령된 자
셋째로는, 음행 하는 자와 혹 한 그릇의 식물을 인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은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위에서 말한 세 가지가 모두 중요하지만, 세 번째는 오늘날 우리가 더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에서를 볼 때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말씀에는 한 그릇의 식물을 인해서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된 자가 있을 까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 그러한 자들이 아주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가끔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끔은 자기의 주장을 내세워 성도들에게 괴로움을 주고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쓴 뿌리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일시적인 즐거움에 영원한 것을 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에서를 볼 때 배가 고팠을 것이고 당장에 장자의 명분은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만약 집 없는 사람에게 이 땅에서 50평 아파트에서 살겠습니까? 아니면 하늘나라에서 2000평 아파트에서 사시겠습니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선 이 땅에서 좀 더 편안한 삶을 택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서와 같은 자인 것입니다. 일시적 즐거움을 위해서 하늘에 것들을 바꾸어 버리는 자인 것입니다. 17절을 볼 때, 우리들은 이 땅에 있는 100원을 얻기 위해 하늘나라의 1억 이상의 것과 바꾸어 버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지금 그런 사람들을 두고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에서의 당시로 볼 때는 배고프고, 당장에는 장자의 명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난 후 그는 눈물을 흘리며 구했으나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도 이런 자들이 있습니다. 현재 잠시의 즐거움 때문에 영원한 것을 버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잠시의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상 주심을 바라보고 유대인들과 더불어 노예 생활하는 것을 더 보화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인 것입니다. 잠시의 죄악의 낙을 누리기 보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서는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일시적인 낙에 영원을 버린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어떠했습니까? 은 삼십에 지옥을 산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믿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 땅에 잠시의 낙을 위해서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 자신은 어떠한가 자신을 한번씩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길 거기서 눈물을 흘리며 후회할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에서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 때 그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늘나라에 가서는 이 땅에서의 행동들에 대해서 발등을 찍고 싶을 만큼 후회를 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자들을 망령된 자들로 말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라
출19:16-21절에서 보면, 하늘의 예루살렘과 이 땅의 예루살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곧 이 땅은 요동할 나라로, 저 하늘 나라는 요동치 아니할 나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 즉" 이라는 말씀은 곧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은 것을 말하며, 요동할 나라는 곧 불타 없어질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말씀에도 이 땅은 곧 불타 없어질 땅으로 간수하신 바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7절에 보면 세상의 심판을 말하며, 심판하여 없어질 것과 우리는 진동하지 아니하는 나라를 받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요동치 아니하는 나라를 받았습니다. 요동한다는 것과 요동치 아니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배를 타고 여행을 해보신 분들은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배를 타고 갈 때 요동하면 굉장히 버티기가 어렵고 차라리 바다 속으로 빠지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흔들리지 않는 땅위에 섰다는 것은 굉장한 행복입니다. 이것은 물론 하나의 비유이지만 우리는 현재 요동하는 즉, 불타 없어질 세상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동치 않을 나라를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달라야 합니다. 첫째는 경건하게 살아야 하며, 둘째는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인하여 떨 수 있는 자는 참 복 있는 사람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말씀은 네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너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가 있는가 살펴보라. 또, 혹시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라. 여기에는 믿는 자들에게 책임이 있고 또 믿지 않는 자 스스로에게도 자신을 돌아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냥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이르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를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고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은 이러한 자들에게 더욱 관심을 갖고 그들이 하늘의 영원한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살펴보고 도와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가운데 쓴 뿌리가 나지 않도록 살펴야 합니다. 다른 성도의 믿음을 흐리게 하고, 실족하게 하는 자들이 아닌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돌아보아 권고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헛된 일에 우리의 영원을 파는 자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잠시 죄악의 낙에 마음을 빼앗겨 영원한 행복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일깨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가서 이 땅에서의 소유했던 것들은 중요치 않을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시의 즐거움에 영원을 팔지 마십쇼.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업, 보상, 영광을 한순간의 즐거움으로 바꾸지 마십쇼.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눈을 뜨고 모세처럼 잠시의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고 어려움 가운데 견뎌내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사람이 늙는 것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 산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궁전에서 살아간 것은 남는 것이 없지만 이스라엘 백성들과 노예로서 살아간 모든 것은 남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육체의 즐거움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간 모든 것은 사라지겠지만 하늘나라를 위해 살아간 삶은 남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여러분의 영원을 팔지 마시기 바랍니다. 에서처럼 망령된 자가 여러분 가운데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경건한 삶을 사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나의 남은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이 삶만이 진정으로 남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