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신 예수님

2010년 June 13일 ()

본문: 요한복음 10:30-42 |

주 제: 하나님이신 예수님

 

본 문: 요한복음 10장 30-42절

 

설교자: 조 성 훈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침례 주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서 오셨을 때 예수님을 단순히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셨습니다. 물론 인간으로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30)”라는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나는 아브라함 전부터 있었다(요 8:58)”는 말씀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나이가 3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받아들이기란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또 유대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예수님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말(마 9:6)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세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듣기에는 참람한 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이셨습니다.

 

유대인들의 반발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31)”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32)” 예수님의 삶을 보면 돌로 맞을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그들이 참람하다 여길지 몰라도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는 돌로 칠 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35-38)” 구약 성경에 보면 유대 재판장들에 대해서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시82:6)”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유대인들을 재판하고 다스렸기 때문에 ‘신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에게도 신이라고 했는데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참람하다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능한 예수님 앞에 유대인들은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거스른 적이 없으셨습니다. 다만 유대인이 만든 전통을 거슬렀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손을 씻지 않는 것이나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 등입니다.

 

예수님도 그들이 자신을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같은 동네에 태어난 어떤 사람이 나이가 30세 정도 되었을 때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오래전에 죽은 사람에 대해서 마치 자신이 그 때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면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나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주님은 그 마음을 아셨습니다.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예수님이 하신 일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그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이적을 행한다면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 놀라운 역사를 행하는 사람이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한다면 믿을 것입니다.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 그가 바다에게 잔잔하라고 명하자 바다가 잔잔해졌다면 그의 말을 믿지 않겠습니까. 세상 어디에도 아직까지 죽은 자를 살린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이적을 본 사람들은 아직까지 이런 이적을 행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하시고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친히 목격하고 증거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골 1:15-17)”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성경적으로 보나 예수님의 하신 일로 보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심지어 주님이 이방 신인 바알세불의 힘을 얻어 일한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대답하시기를 마귀가 마귀와 싸우면 어떻게 설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개미들이 모여서 사람에 대해서 연구를 한다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정보 외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나 그가 하는 일을 보면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모든 것이 믿어지나 그렇지 않은 자는 어떤 것도 믿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음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침례 주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39-42)” 아무리 허황된 얘기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고 그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이 이런 분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세계와 우리 세계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분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구원주이시며 생명을 지키시는 분이요 우리의 모든 것을 약속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목격한 사람들은 “내가 보았고 만져보았고 친히 경험한 분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마 역시 주님의 부활을 확인하고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그 손에 잡고 계시며,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믿는 주님이 누구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이시고 창조주이시고 만물을 붙들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구원을 책임지고 계신 분이며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결론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창조주이시고 그는 진정한 선지자이십니다. 거짓 가운데 사는 우리에게 모든 진리를 알게 하시고 눈을 떠 바른 것을 보게 하시고 죄에서 구속하셨습니다. 또한 영원토록 다스리실 왕이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우리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대하고 있는가. 하나님이신 주님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