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 하늘나라의 가치
본 문 : 마태복음 13장 44절~46절
설교자 : 조성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늘 나라의 가치」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여러 곳을 통해 사람들이 헛된 것을 위해 인생을 살고, 또 투자하며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살게 되면,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최근 줄기 세포를 통한 유전자 공학과 치료에 관심을 갖는 것도 바로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더 오래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만일, 현대 과학의 노력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약이 개발된다면, 그 약은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요? 그 가치는 값으로 따질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도 예수님께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는 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을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그 계명들은 어려서부터 모두 지켜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에게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좇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 상이 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그가 재산이 많은 고로 심히 근심하며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을 따름으로써 하늘 나라, 즉 영생을 얻을 것을 그에게 제안하셨으나, 그는 예수님의 제안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 사람은 주님을 만나고는, 자기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를 꺼려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주님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그 부자 청년과 같은 제안을 주님께로부터 받는다면, 주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내 재산과 내 소유를 모두 가지고 있는 채 영생을 얻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말이 우리의 재산을 모두 팔아서 주님을 섬겨야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보다 주님과 주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귀히 여기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밭을 갈다가 보화를 발견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 보화가 있는 밭을 샀습니다.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모든 소유보다 그 보화가 더 값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에 대해 여러분의 모든 것을 투자할 만한 가치를 발견하고 있습니까? 또 본문 말씀에 나오는 진주 장사는 새로운 진주를 보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살 만한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주는 하늘 나라요, 주님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주님을 만난 것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팔아도 살 수 없는 값진 보화를 만난 것과 같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오라. 너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때, 베드로가 그물을 던져 버리고 주님을 좇았다고 말합니다. 만일 오늘날 제게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어쩌면 그 제안을 무시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을 잘 안다할지라도,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물을 버려두고, 또는 가족을 버리고,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어떠했습니까? 그들 역시, 그들의 생계와 가족들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데 모든 것을 버린 것입니다. 또 하루는 사람들이 모두 주님을 떠나가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나를 떠나려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베드로는 주님을 진정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그와 같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마음의 눈을 밝히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하신 것인지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어떠한 것에 투자하기를 꺼린다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것의 가치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영적인 눈이 밝아지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더러는 예수님에게로 나와서 다시 돌아가고, 머뭇거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안에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보화를 얻은 것 같이 기뻐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차츰차츰 그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가치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보배와 같은 예수님을 만나고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투자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하늘 나라에 투자하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그곳에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투자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 나라에 투자해서 손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 나라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그 매력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주 장사나 보화를 발견한 자처럼 그 가치를 알고 매력을 느껴야 투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늘 나라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하늘 나라에 투자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진실로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어리석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머지 않아서 이 세상을 떠나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이 땅에 놔두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 나라에 가고 나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하게 될 후회는 아마도 왜 이렇게 좋은 하늘 나라에 투자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일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우리의 인생을 모두 투자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찬 물 한 그릇도 그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 "형제를 대접하는 것도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는 모든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망설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쉽게 투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그 가치를 느끼고, 체험해야만 확실한 투자를 합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우리의 일생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가치가 있다면, 투자하고 있습니까? 저는 솔직히 말씀드려 전적으로 투자하고 있지 못합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 모두를 주님께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알면서도 투자를 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내가 주님을 잘 모르는 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삶 동안에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뜨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이 세상은 머지 않아 끝이 납니다. 또 우리 역시 이 세상을 떠나가며, 결국은 우리가 하늘 나라에 투자한 것만이 남게 됩니다. 이것이 명백한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있어서 무엇을 가리게 될지 알지 못하겠다고 말했고,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면, 아무 일에도 부끄럽지 않으며, 자신의 삶 동안에 모든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특권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는 왜 그 큰 보화와 영화를 버리고 노예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거기서 그만한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애굽의 모든 영화를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는 것보다 더 귀히 여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늘에서 상주시는 이인 하나님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눈을 뜬 사람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눈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 즉, 자식에 관한 일, 사업에 관한 일, 육체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들이 우리의 영적인 눈을 흐리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곳에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영생의 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할만한 가치를 발견해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만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도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릴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끔 TV를 보면서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외국의 유명한 가수나 배우가 한국에 올 때, 공항에서 그들을 반기는 사람들을 볼 때인데, 저는 그 주님에 대한 제 마음이 그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님께 참 죄송합니다. 영원토록 섬길만한 분을 만났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람들보다 못한 제 자신이 주님께 참 죄송한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피아노와 연관되어있지 않은 것은 일체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내겐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죽는 것도 내겐 유익하다." 라고 말한 것과 어쩌면 일맥 상통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먹어도 주를 위하여 먹고, 먹지 않아도 주를 위해 먹지 않으며,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 고 말했습니다. 그의 마음 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그가 그리스도에게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자세인 것입니다. 진실로 주님을 알게 되면, 주님을 위해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물건을 살 때, 모든 사람들의 특성은 아마도 물건값을 깎는 경향일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물건 뿐 아니라 하늘 나라의 영원한 생명도 굉장히 깎으려고 합니다. 될 수 있으면 적게 지불하고 하늘 나라에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 라는 말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구원은 명백하게 '은혜'입니다. 하지만, 그 구원을 사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팔아야 함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세상, 가족, 자신의 목숨을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주님의 가치를 알게 되면, 주님을 위해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투자해 섬길 가치가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을 섬길 기회가 있을 때, 모든 것을 투자해서 주님을 섬기시길 바랍니다.